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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가난한 이들의 변호사” 지그마링엔의 성 피델리스(Saint Fidelis of Sigmaringen)

by 1살 비오 2024.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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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지그마링엔의 성 피델리스(Saint Fidelis of Sigmaringen)
축일(Feast) 4월 24일( 24 April)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1729년 3월 24일(24 March 1729)
시성(Canonized) 1746년 6월 29일(29 June 1746)
수호(Patronage)  
신분(Identity) 신부(Priest), 선교사(Missionary), 순교자(Martyr)
활동지역(activity area) 지그마링엔(Sigmaringen)
활동연도(activity year) 1578-1622년

 

 

지그마링엔의 성 피델리스(Saint Fidelis of Sigmaringen)는 1578년 10월 독일에서 태어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법학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철학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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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Fidelis of Sigmaringen was born in Germany in October 1578, graduated from university, earned a doctorate in law, and taught philosophy. 

 

이때 그는 스스로 회개생활을 시작했는데, 고행자의 옷을 입고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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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is time, he began a life of repentance on his own, wearing the clothes of an ascetic and not even drinking alcohol. 

 

1604년 그는 잠시 귀족 자제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봉직하다가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변호사로 개업하면서부터 그의 인격과 학문이 괄목할 정도로 발전하였고 또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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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604, he briefly served as a teacher to children of noblemen, received a doctorate in law, and began practicing law. From then on, his personality and scholarship developed significantly and he received recognition. 

 

그리고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후 그는 1612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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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he earned the nickname the poor man's lawyer. Afterwards, he was ordained a priest in 1612. 

 

그는 사제 서품을 앞두고 자신의 유산을 반으로 나누어서 한 몫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른 한 몫은 신학교를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주교에게 증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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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being ordained as a priest, he divided his inheritance in half and gave one portion to the poor and the other portion to the bishop to support the seminary. 

 

사제로 서품된 후 그는 주로 설교와 고해성사를 주는 임무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그의 인품과 재능을 익히 알고 있던 주교는 정통 교리를 수호하도록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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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being ordained as a priest, he devoted himself mainly to preaching and giving confessions. However, the bishop, who was well aware of his personality and talent, ordered him to protect orthodox doctrine. 

 

그러나 이를 싫어한 이들은 그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며칠 밤을 기도하면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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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ever, those who disliked this began to rebel against him. So he spent several nights praying. 

 

그 후 그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사들을 죽여라!'라는 외침을 무시하고 미사를 봉헌하다가 성난 군중들 앞에 당당히 나아가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다.”는 설교를 하고 군중들의 공격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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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wards, he ignored the cries of 'Kill the Capuchin Friars Friars Minor!' and celebrated mass. Then, he boldly stepped forward in front of the angry crowd and preached, "There is one Lord, one faith, and one baptism," and the crowd attacked him. He received and was marty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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