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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베들레헴 수도회의 설립자” 성 베드로 데 베탕쿠르트(Saint Peter of Saint Joseph de Betancur)

by 1살 비오 202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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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베드로 데 베탕쿠르트(Saint Peter of Saint Joseph de Betancur)
축일(Feast) 4월 25일(April 25)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1980년 6월 22일(June 22, 1980)
시성(Canonized) 2002년 7월 30일(July 30, 2002)
수호(Patronage) 노숙자와 병자들을 섬기는 사람들(People who serve the homeless and sick)
신분(Identity) 설립자(Founder)
활동지역(activity area) 과테말라(Guatemala)
활동연도(activity year) 1626-1667년

 

 

성 베드로 데 베탕쿠르트(Saint Peter of Saint Joseph de Betancur)는 1626년 카나리아 제도에 속한 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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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Peter of Saint Joseph de Betancur was born in 1626 on an island in the Canary Islands. 

 

그는 정복자 후손이었지만 그의 부모와 가족은 매우 가난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얼마 안되는 양떼를 돌보는 목동으로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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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hough he was a descendant of conquistadors, his parents and family were very poor. So he started working as a shepherd looking after a small flock of sheep from an early age. 

 

그의 부모는 그가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도록 돌보았고, 어린 그는 자연스럽게 깊은 명상적 영혼을 갖고 성장했다. 그래서 그는 소년 시절부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법을 배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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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 parents took care of him growing up healthily in their faith, and as a child, he naturally grew up with a deeply meditative spirit. So, from a young age, he learned to see God in everything around him. 

 

아메리카에서 사는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그곳에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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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he heard about the miserable conditions of the people living in America, he decided to take the message of Christ there. 

 

그래서 그는 자신의 한 친척이 총독의 비서로 일하고 있던 과테말라를 향해 출발했다. 하지만 그가 준비한 돈은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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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he set off for Guatemala, where a relative of his was working as secretary to the governor. But the money he had prepared ran out. 

 

그래서 그는 부두에서 힘든 일을 하며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또 갈 여비 또한 마련해야 했다. 이렇게 힘든 여정 끝에 그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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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he had to pay the bills by doing hard work on the dock, and he also had to come up with travel expenses. After such an arduous journey, he was able to arrive safely. 

 

당시 너무나 가난했던 그는 하루를 버틸 빵을 얻기 위해 구호품을 나누어주던 곳에 줄을 서야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는 자신을 환대하고 또 일생 동안 그의 상담자가 되어준 유명한 선교사였던 수도사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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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so poor at the time that he had to stand in line where relief goods were distributed to get bread to last the day. But here he met a monk, a famous missionary, who welcomed him and became his counselor throughout his life. 

 

그 수도사는 그 지방의 직물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도 찾아주었다. 그는 사제가 되고 싶어하는 소망이 자신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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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nk also found him a job working in a local textile factory. He realized that the desire to become a priest was within him. 

 

그래서 그는 1655년 프란치스코 재속 3회(Franciscan tertiary)에 입회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된 일과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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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he entered the Franciscan tertiary in 1655. From then on, he decided to dedicate all of his time to helping those who were suffering through indescribably hard work. 

 

그는 인간에 대한 너그러움과 진실한 인류애를 갖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신하면서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과 비인간적인 노동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사도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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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his generosity and sincere love for humanity, he devoted himself entirely to God's will and became an apostle for African slaves and those suffering from inhumane labor. 

 

그리스도의 사랑에 고무된 그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노력했다.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시민들과 모금활동을 펼치며 가난한 사람들이 일 때문에 미사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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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ed by the love of Christ, he sought to be all things to all people. To help the poor, he carried out fundraising activities with citizens and took care to ensure that the poor did not miss mass due to work.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남녀 젊은이들을 모아 조직했고 이는 후에 베들레헴 수도회(Order of Bethlehemite Brothers)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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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gathered and organized like-minded young men and women, who later founded the Order of Bethlehemite Brothers. 

 

늘 가난한 이들 안에서 경건하게 봉사했던 그는 1667년 4월 25일 41세를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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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ho always served piously among the poor, died at the age of 41 on April 25, 1667.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시성식에서 하신 말씀
(Pope John Paul II's remarks at the canonization ceremony)

페드로 수사는 그의 고향 땅에서 그리고 수많은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기도에 충실하였습니다. 특히 이곳 ‘갈보리의 외딴집’에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매 순간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자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페드로 수사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뛰어난 모범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덕으로 나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특별히 기도에 정진하는 것’(교황 교서 <새 천년기 Novo Millennio Ineunte> 32항)임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과테말라와 그 외 여러 나라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다시 한 번 간곡히 청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행동을 기도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분의 공동체가 기도의 참된 도량이 되게 하십시오. 치열한 삶은 언제나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 페드로 수사는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으며, 특별히 베들레헴의 신비와 십자가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자신의 심오한 영성을 가꾸었습니다. 페드로 수사예수님의 탄생과 소년 시기를 묵상하면서 말씀이 육화된 이 엄청나고 획기적인 사건의 근본적 의미에 깊이 몰입함으로써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면서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모든 것을 박탈당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 활동에 용맹스럽게 뛰어들 수 있는 힘을 발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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