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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참회하는 여인의 수호성인” 코르토나의 성녀 마르가리타(Saint Margaret of Cortona)

by 1살 비오 2024.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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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코르토나의 성녀 마르가리타(Saint Margaret of Cortona)
축일(Feast) 2월 22일(22 February)
성인 구분(Saint Type) 성녀(Saintess)
시복(Beatified)  
시성(Canonized)  
수호(Patronage) 노숙자(homeless people), 정신병자(mentally ill people), 조산사(midwives), 참회하는 여인(penitent women), 미혼모(single mothers), 독신 평신도 여성(single laywomen)
신분(Identity) 통회자(Penitent), 3회원(Third Order of Saint Francis)
활동지역(activity area) 코르토나(Cortona)
활동연도(activity year) 1247-1297년

 

 

코르토나의 성녀 마르가리타(Saint Margaret of Cortona)는 이탈리아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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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Margaret of Cortona was born in Italy as the daughter of a farmer. 

 

그녀는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 밑에서 갖은 학대를 받으며 진정한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채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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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lost her mother when she was seven, suffered all kinds of abuse under her stepmother, and grew up without feeling true love. 

 

외모가 뛰어나게 예뻤던 그녀는 17살 떄 더는 새어머니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집을 뛰쳐나와 성(城)의 하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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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was exceptionally pretty, but when she was 17, she could no longer endure her stepmother's abuse, so she ran away from home and became a castle maid. 

 

그곳에서 향락을 즐기는 성주의 아들과 눈이 맞아 그와 결혼을 약속하고 성밖에 거처를 마련해 살면서 아들까지 낳았다. 하지만 성주의 아들은 10년 가까이 결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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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she met the son of the castle owner, who enjoyed pleasure, and promised to marry him. She lived outside the castle and even had a son. However, the son of the governor of Seongju did not keep his promise to marry for nearly 10 years. 

 

그녀는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귀족 청년을 유혹한 죄 많은 여자처럼 여겨져 갖은 멸시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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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her, she was treated with all kinds of contempt by the people, being regarded as a sinful woman who seduced a noble young man. 

 

그러던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다가와 그녀의 옷을 물고 잡아당겨 숲속의 한 밤나무 밑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무참히 살해된 연인의 시체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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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one day, a dog came up to her, bit her clothes, pulled her and took her under a chestnut tree in the forest, where she found the body of her lover, who had been brutally murdered. 

 

그녀는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연인의 처참한 모습을 보자마자 하느님의 심판을 절실히 깨닫고 참회의 생활을 시작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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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soon as she saw the miserable state of her lover, who had already begun to deteriorate, she became acutely aware of God's judgment and wanted to begin a life of penance. 

 

그녀는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고행복을 입은 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으나 새어머니에게 이내 쫓겨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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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returned to her father's house wearing a penitent robe with her young son in her arms, but was soon kicked out by her stepmother. 

 

거의 절망 상태에 빠졌을 때, 그녀는 작은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 성당에 들어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고해성사를 받았다. 그녀는 성당(Cathedral)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사람들에게 용서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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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 state of near despair, she entered the chapel of the Order of Friars Minor and went to confession, shedding tears of penitence. She knelt in front of the cathedral door, publicly confessed her sins and asked people for forgiveness. 

 

그녀는 작은 형제회의 재속 3회원(Third Order of Saint Francis)이 되고자 했지만, 그녀의 과거 때문에 쉽게 입회 허가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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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wanted to become a member of the Third Order of Saint Francis, but because of her past, she was not easily admitted. 

 

그렇게 3년의 통회 생활을 거쳐 그녀의 통회가 참되다는 것을 인정받고 1277년 비로소 입회가 허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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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ree years of contrite life, her contrition was recognized as true and she was finally allowed to join in 1277. 

 

그녀는 통회 생활을 시작한 지 23년째 되던 해인 1297년 2월 22일에 50세의 나이로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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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was embraced by God at the age of 50 on February 22, 1297, the 23rd year since she began her life of contr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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