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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가난한 자의 옹호자” 성 가시미로(Saint Casimir)

by 1살 비오 202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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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가시미로(Saint Casimir)
축일(Feast) 3월 4일(4 March)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시성(Canonized)  
수호(Patronage)  
신분(Identity) 왕자(Prince), 증거자(Confessor)
활동지역(activity area)  
활동연도(activity year) 1458-1484년

 

 

성 가시미로(Saint Casimir)는 폴란드의 국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성모님께 대한 깊은 신심과 정결의 소중함을 어려서부터 마음에 담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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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Casimir was born as the son of the King of Poland. Under the influence of his deeply religious mother, he had deep devotion to the Virgin Mary and the importance of chastity in his heart from an early age. 

 

가시미로(Casimir)의 의미는 ‘파괴하다’를 뜻하는 카시티(kaziti)와 ‘평화, 세상’을 뜻하는 미루(miru)를 합쳐서 만든 카시미에르스(Kazimierz)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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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aning of Casimir comes from Kazimierz, a combination of kaziti, meaning ‘destroy,’ and miru, meaning ‘peace, the world.’ 

 

여섯 살부터는 학문과 종교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스럽고 엄격한 생활 그리고 사랑이 충만한 생활에 대한 원의를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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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age of six, I received education in academics and religion. Meanwhile, my desire for a holy, strict life and a life filled with love naturally developed. 

 

그는 부왕의 부당한 계획을 부탁을 받자 거부하였다. 그로 인해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 감금되었지만 결코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상황을 기도와 수덕 생활에 전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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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asked to help with his father's unjust plan, he refused. As a result, he incurred his father's wrath and was imprisoned, but he never changed his decision. Rather, he used this situation as a good opportunity to devote himself to prayer and a life of asceticism. 

 

또한 그는 결혼시키려는 아버지의 계획도 끝까지 거부하고 동정을 지켰다.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뛰어났던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성모를 찬송하세(Daily, Daily Sing to Mary)’라는 찬가를 직접 지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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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also rejected his father's plan to marry her to the end and remained a virgin. He had great devotion to the Virgin Mary and wrote and sang the hymn ‘Daily, Daily Sing to Mary.’ 

 

그는 ‘가난한 자의 옹호자’로 불릴 정도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잘 돌보아주었고, 권좌에 앉아 다스리기보다는 늘 가난한 이를 위해 봉사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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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said that he cared for the poor and suffering so well that he was called ‘the advocate of the poor,’ and that he always preferred to serve the poor rather than rule from the throne. 

 

살아서도 백성의 존경을 받았던 그는 1484년 26세의 나이로 폐결핵으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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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respected by the people even when he was alive, and died of tuberculosis in 1484 at the age of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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