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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낮은 자리의 황후” 룩셈부르크의 성녀 쿠네군다(Saint Cunigunde of Luxembourg)

by 1살 비오 202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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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녀 쿠네군다(Saint Cunigunde of Luxembourg)
축일(Feast) 3월 3일(3 March)
성인 구분(Saint Type) 성녀(Saintess)
시복(Beatified)  
시성(Canonized) 1200년 3월 29일(29 March 1200)
수호(Patronage)  
신분(Identity) 동정녀(virgin), 과부(widow), 황후(empress)
활동지역(activity area)  
활동연도(activity year) 978-1033년

 

 

룩셈부르크의 성녀 쿠네군다(Saint Cunigunde of Luxembourg)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훌륭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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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Cunigunde of Luxembourg was born into an aristocratic family and grew up receiving excellent religious education from a young age. 

 

그녀는 20세에 결혼하였는데 그녀의 남편은 어느 목수가 제작한 십자가를 선물했다. 전기작가에 따르면 결혼 첫날밤에 그녀는 남편에게 정결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하기 위해 동정을 지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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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got married at the age of 20, and her husband gave her a cross made by a carpenter. According to her biographer, on their first wedding night she told her husband that she wanted to remain a virgin in order to dedicate her life to God with a pure heart. 

 

남편 또한 자신도 평소 그러한 소망이 있었다며 일생 남매처럼 지내되 세상에는 알리지 말자며 동정서원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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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said that the husband also said that he had always had such a wish and that he made a vow of virginity to live as brother and sister for the rest of his life but not to reveal it to the world. 

 

그런데 결혼 첫날밤부터 서로 동정을 지키며 남매처럼 지내던 그녀는 얼마 뒤에 모함하는 자들의 희생물이 되었고 남편마저 일시적이나마 아내를 의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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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ever, from the first night of their marriage, she remained virginal and lived as a brother and sister, but after a while, she became a victim of framers, and even her husband became suspicious of her, even if only temporarily.  

 

항변해야 할 처지에 처하게 된 그녀는 뜨거운 불로 달구어진 12개의 쟁기 위로 걸어갔고 아무런 상처나 화상도 입지 않아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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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d with having to plead her case, she walked over 12 heated plows and suffered no injuries or burns, proving her innocence. 

 

남편은 잠시나마 아내를 의심한 자신의 잘못을 머리 숙여 사과하고 마음으로 일치하여 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선정을 베풀고 나라 안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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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sband bowed his head and apologized for his mistake of doubting his wife, even if only for a moment, and not only became united in their hearts, but he also devoted himself to providing charity for the glory of God and spreading the Christian faith throughout the country. 

 

남편이 사망한 후 그녀는 나라를 다스려달라는 청을 물리치고 수도 생활에 정진할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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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her husband died, she decided to reject the Qing request to rule the country and devote herself to monastic life. 

 

그녀는 지난날 황녀로서 누린 모든 부귀영화를 잊고 비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초라한 수도원에서 기꺼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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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forgot all the wealth and glory she had enjoyed as a princess in the past, did not hesitate to do menial jobs, and lived happily in a humble monastery.

 

권력과 부귀영화 속에 교만과 방종으로 흐를 수 있는 삶을 겸손과 정결한 삶으로 완성한 그녀는 1033년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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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ied in 1033, having completed a life of pride and self-indulgence amidst power and wealth with a life of humility and p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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