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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임산부와 아픈 아이들의 수호성인” 코르비의 성녀 콜레타(Saint Colette of Corbie)

by 1살 비오 2024.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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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코르비의 성녀 콜레타(Saint Colette of Corbie)
축일(Feast) 3월 6일(6 March)
성인 구분(Saint Type) 성녀(Saintess)
시복(Beatified) 1740년 1월 23일(23 January 1740)
시성(Canonized) 1807년 5월 24일(24 May 1807)
수호(Patronage)  
신분(Identity) 수녀(Nun)
활동지역(activity area) 코르비(Corbie)
활동연도(activity year) 1381-1447년

 

 

코르비의 성녀 콜레타(Saint Colette of Corbie)는 1381년 1월 13일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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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Colette of Corbie was born in France on January 13, 1381. 

 

그녀의 부모는 결혼 후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이들의 수호성인인 성 니콜라우스(Saint Nicolaus)에게 기도해 딸을 얻자 니콜레트(Nicolette)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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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her parents were unable to have a child after marriage, they prayed to Saint Nicolaus, the patron saint of children, and had a daughter, who baptized her with the name Nicolette. 

 

어려서부터 기도와 고행을 좋아했던 그녀는 17세 때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일하던 수도원의 도움으로 잠시 수녀원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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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loved prayer and asceticism from a young age, but lost both her parents when she was 17. She stayed at the convent for a while with the help of the monastery where her father worked. 

 

이후 그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준 뒤 작은 형제회의 3회원(Third Order of Saint Francis)이 되어 1402년 9월 17일부터 암자를 짓고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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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wards, she distributed all of her parents' inheritance to the poor, became a member of the Third Order of Saint Francis, built a hermitage on September 17, 1402, and began living as a hermit. 

 

그녀는 21살부터 코르비의 은둔소에서 홀로 살았는데, 그곳에서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Saint Francis)의 환시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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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age of 21, she lived alone in a hermitage in Corvi, where she had a vision of Saint Francis of Assisi. 

 

이떄 그는 그녀에게 클라라회(Poor Clares)가 엄격하던 그들 본래의 회칙에 따라 살도록 인도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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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is time, he is said to have told her to guide the Poor Clares to live according to their original strict rules. 

 

그녀는 클라라회(Poor Clares)가 초창기 정신에 따라 살도록 개혁하라는 환시에 응답하고자 자신의 은둔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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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left her hermitage to respond to a vision calling for a reformation of the Poor Clares to live according to their original spirit.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는 1406년 8월 29일 교황 칙서를 통해 그녀가 클라라회(Poor Clares)에 입회하는 것을 허락하고, 기존 수도원의 개혁과 새로운 수도원 설립의 사명을 정식으로 위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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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ugust 29, 1406, a papal bull allowed her to join the Order of Clares (Poor Clares) and formally entrusted her with the mission of reforming existing monasteries and establishing new monasteries. 

 

처음에 그녀는 지방의 클라라회(Poor Clares)를 개혁하려 노력했지만 그 지방 수녀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즈음 클라라회(Poor Clares)는 청빈 정신에서 벗어나 수도 생활이 매우 해이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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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first she tried to reform the local Poor Clares, but encountered strong opposition from local nuns. By that time, the Poor Clares had moved away from the spirit of poverty and their monastic life had become very relaxed. 

 

1407년 그녀는 새 수도원을 설립하고 엄격한 회칙을 준수하며 절대적인 가난과 단식을 실천했다. 1410년부터 그녀의 개혁 사업은 점차 성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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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407, she founded a new monastery and observed strict rules, practicing absolute poverty and fasting. From 1410 her reform efforts began to become increasingly successful. 

 

그녀는 임산부와 아픈 아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데 이는 그녀가 행한 기적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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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is revered as the patron saint of pregnant women and sick children, in connection with the miracles she performed. 

 

그녀가 교황을 만나기 위해 니스로 여행하던 중 한 친구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는 셋째 아이를 갖고 있었고 출산의 어려움으로 죽을 위험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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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she was traveling to Nice to meet the Pope, she stayed at the home of a friend whose wife was expecting her third child and was in danger of dying from childbirth difficulties. 

 

그녀는 즉시 그 지역 성당에 가서 기도했고, 어머니는 아이를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태어난 아이는 그녀의 비서 겸 전기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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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immediately went to the local church and prayed, and the mother was able to give birth safely. The child thus miraculously born became her secretary and biographer. 

 

또 한 번은 한 여인이 사산아를 낳았는데 아이의 영혼 구원을 위해 아버지는 성당에 가서 세례를 청했다. 그러나 사제는 그 아이가 이미 죽었다며 세례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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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time, a woman gave birth to a stillborn child, and to save the child's soul, the father went to the church and asked for baptism. However, the priest refused to baptize the child, saying he was already dead. 

 

그래서 수녀원으로 달려갔을 때, 그녀는 교황으로부터 받은 수도복으로 그 아이를 감싸주고 사제에게 가라고 했는데,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의식이 돌아와 울고 있었다. 사제는 즉시 그 아이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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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en she ran to the convent, she wrapped the child in the habit she had received from the Pope and told him to go to the priest. When she arrived, the child had regained consciousness and was crying. It is said that the priest immediately baptized the child. 

 

그녀는 1447년 3월 6일 평화로이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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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ied peacefully on March 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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