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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catholic baptismal name)]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한 교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Saint Ignatius of Antioch)

by 1살 비오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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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Saint Ignatius of Antioch)
축일(Feast) 10월 17일(17 October)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시성(Canonized)  
수호(Patronage) 동부 지중해의 교회(Church in eastern Mediterranean), 북아프리카의 교회(Church in North Africa)
신분(Identity) 주교(bishop), 순교자(martyr), 교부(church father)
활동지역(activity area) 안티오키아(Antiochia)
활동연도(activity year) 35?-107년경

 

초대교회의 사도 교부이자 순교자로서 성 이냐시오(Saint Ignatius)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아마도 그는 시리아 출신인 듯하며, 사도 성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제자였음이 분명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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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n apostolic church father and martyr of the early church, not much is known about the life of Saint Ignatius. He was probably from Syria, was clearly a disciple of the Apostle St. John (December 27), and converted to Christianity.

 

그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가 세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사도 성 베드로의 뒤를 이어 제2대 혹은 제3대 주교로 임명되고 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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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appointed and consecrated as the second or third bishop, succeeding the Apostle Saint Peter, at the Church of Antioch in Syria, founded by the Apostles Saint Peter (Petrus) and Saint Paul (June 29).

 

당시 안티오키아 교회는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곳이며 이방인을 향한 선교 여행의 출발지이자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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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at time, the Antioch Church was the place where believers were first called ‘Christians’ and was the starting point and center of missionary travel to Gentiles.

 

 

 

특히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는 초대교회 안에서 로마 교회와 함께 교회를 떠받치고 있던 곳이 안티오키아 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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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articular, after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it was the Antiochian church that supported the early church along with the Roman church.

 

따라서 약 40여 년 동안 안티오키아 교회를 위해 헌신하던 성 이냐시오 주교가 트라야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로마로 압송된다는 사실은 전 교회의 큰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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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fore, it was a great sorrow to the entire church that Bishop Ignatius, who had devoted himself to the Church of Antioch for about 40 years, was arrested, tried, and taken to Rome during Emperor Trajan's persecution of Christians.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 중에 그는 모두 일곱 개의 편지를 썼는데, 이는 ‘그리스도교 문헌학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그 내용이 풍부하고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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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process of being transported to Rome, he wrote a total of seven letters, which are so rich and valuable that they are called ‘pearls of Christian philology.’

 

특히 신학적으로 교회, 결혼, 삼위일체, 강생, 구속 그리고 성체성사에 관한 그의 교육적인 편지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저서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사적 문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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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articular, his educational letters on the theological issues of the church, marriage, the Trinity, and the Eucharist are historical documents that account for a large portion among early Christian writings.

 

성 폴리카르푸스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선배 주교로서 후배 주교에게 사목자로서 지녀야 할 자세와 덕에 관해 설명하였고,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 외에 다른 다섯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고, 주교에게 순명하며,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권고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를 일컬어 처음으로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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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 letter to Bishop St. Polycarp, he, as a senior bishop, explained to junior bishops the attitude and virtue they should have as pastors and In addition to the letter to the Roman Church, letters to five other church communities contain exhortations to unite in Christ, obey the bishop, and be careful not to fall into heresy. He also used the name ‘Catholic Church’ for the first time to refer to the Christian church community.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순교지로 가는 여정 중에 자신의 신앙과 주님께 대한 사랑을 감동적으로 전해주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순교와 성체성사를 긴밀히 연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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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 letter to the Roman Church, he movingly conveyed his faith and love for the Lord during his journey to the site of martyrdom. Here he closely linked his martyrdom and the Eucharist.

 

 

 

“나는 모든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내가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죽으러 간다고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나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나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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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rote letters to all the churches, telling them all that I am willing to die for God if you do not interfere. This is my plea. Please don't do me any unnecessary favors. Leave me to become prey to wild beasts. I can go to God through it. I am the grain of God's wheat. I will be ground by the teeth of wild beasts and become the clean bread of Christ. Pray to Christ that through this instrument of wild beasts I may become a sacrifice consecrated to God.”

 

또한 그는 같은 편지에서 순교의 고통을 영원한 생명을 위한 ‘출산’으로 표현했다. 해산의 고통을 통해 새 생명이 태어나듯이, 순교의 고통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 부활의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순교한 날을 축일로 정하는 전통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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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o, in the same letter, he expressed the pain of martyrdom as ‘birth’ for eternal life. Just as new life is born through the pain of childbirth, through the pain of martyrdom, one is reborn in God and receives the joy of resurrection. So the church came to have a tradition of designating the day of martyrdom as a feast day.

 

로마로 압송된 성 이냐시오는 107년경 12월 20일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맹수형을 받고 사자의 밥이 되어 장렬히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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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Ignatius, who was transported to Rome, was martyred by a lion in the Roman amphitheater on December 20, around 107.

 

성 이냐시오께서 하셨던 말씀들(Words of Saint Ignatius)

① “믿음과 사랑만이 전부입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②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처하심을 깨달으면서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의 성전이 되고 그분은 우리 안에서 우리 하느님이 되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③ “분열을 피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닮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④ “이제 여러분은 온유함을 취하여 주님의 몸인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인 사랑 안에서 자신들을 새롭게 하십시오.”

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 하듯이 주교에게 순종하면 이는 여러분이 인간적인 것에 따라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 있음을 저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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