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실레시아의 성녀 헤드비지스(Saint Hedwig of Silesia) |
축일(Feast) | 10월 16일(16 October)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녀(Saintess) |
시복(Beatified) | |
시성(Canonized) | 1267년 3월 26일(26 March 1267) |
수호(Patronage) | 폴란드(Poland), 실레시아(Silesia) |
신분(Identity) | 과부(widow), 수녀(nun) |
활동지역(activity area) | 실레시아(Silesia) |
활동연도(activity year) | 1174?-1243년 |
성녀 헤드비지스(Saint Hedwig)는 독일 바이에른(Bayern)의 안덱스(Andechs) 성에서 여덟 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다.
Saint Hedwig was born at Andechs Castle in Bavaria, Germany, as one of eight children.
그녀는 프랑코니아(Franconia)의 키칭겐(Kitzingen)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12살 때에 18살의 폴란드 왕자 하인리히 1세(Henry the Bearded)와 결혼하였다.
She was educated at the Kitzingen monastery in Franconia, and at the age of 12 she married the 18-year-old Polish prince Henry the Bearded.
남편은 매우 열심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아내의 신앙생활과 자선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The husband was a very zealous and courageous person and actively supported his wife's religious life and charity activities.
그는 아내의 요청에 따라 여러 수도회에 아낌없는 후원을 보냈다. 또한 1202년 노이마크트(Neumarkt)의 병원에서 나환자 여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아내의 활동에 감동해 트레브니츠(Trebnitz)에 있는 자신의 땅에 시토회 수녀원(Cistercian nuns)을 지어 기부하였다.
At his wife's request, he provided generous support to several religious orders. Also, in 1202, he was moved by his wife's dedicated care for leper women at the hospital in Neumarkt, so he built and donated a Cistercian nuns on his land in Trebnitz.
1238년에 남편과 사별한 성녀 헤드비지스(Saint Hedwig)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세운 트레브니츠(Trebnitz) 수녀원에서 수도 생활에만 전념하여 큰 덕을 쌓았다. 그녀는 농사를 짓기 위해 척박한 실레시아(Silesia) 땅을 개간하고 많은 독일 이주민을 초대해 새로운 도시와 촌락들을 만들었다.
Saint Hedwig, who lost her husband in 1238, devoted herself to monastic life at the Trebnitz convent, which she founded with the help of her husband, and accumulated great virtue. She cleared the barren land of Silesia for farming and invited many German immigrants to create new cities and villages.
그렇게 늘 주위 사람들의 물질적 · 영성적 이익을 위하여 헌신했으나, 성녀 헤드비지스(Saint Hedwig) 자신은 극도의 가난을 실천하며 하느님만을 섬겼다.
Although she always devoted herself to the material and spiritual interests of those around her, Saint Hedwig herself practiced extreme poverty and served only God.
또한 수도복을 입고 딱딱한 침대에서 자며 추운 날씨에도 신발을 손에 들고 맨발로 다니며 기도 생활에 전념하는 등 고행과 절제의 생활을 실천했는데, 적어도 한겨울만은 신발을 신고 다니라는 주교의 조언에 순종했다고 한다.
He also practiced a life of asceticism and abstinence, wearing monastic robes, sleeping on a hard bed, going barefoot with his shoes in hand even in cold weather, and devoting himself to a life of prayer. It is said that he obeyed the bishop's advice to wear shoes at least in the middle of winter. .
성녀 헤드비지스(Saint Hedwig)는 1243년 10월 15일 자기 딸 제르트루다(Gertrude)가 원장으로 있던 트레브니츠(Trebnitz)의 시토회 수녀원(Cistercian nuns)에서 선종하여 남편과 함께 수녀원 성당에 안치되었다.
Saint Hedwig died on October 15, 1243, at the Cistercian nuns in Trebnitz, where her daughter Gertrude was the prioress, and was buried with her husband in the convent chapel. .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미 성인으로 불렸던 그녀는 1267년 3월 26일 교황 클레멘스 4세(Clemens IV)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폴란드와 실레시아(Silesia) 지방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으며 20세기에 와서 성녀 헤드비지스(Saint Hedwig)는 폴란드와 독일의 화해의 수호자로서 공경받았다.
Already called a saint during her lifetime, she was canonized by Pope Clement IV on March 26, 1267, and is greatly revered as the patron saint of Poland and Silesia. In the 20th century, she was considered a saint and Saint Hedwig was revered as the guardian of reconciliation between Poland and Germany.
실레시아의 성녀 헤드비지스(Saint Hedwig of Silesia)의 독서기도
이 하느님의 여종은 천상 예루살렘의 건설에 놓는 살아 있는 돌들은 이 세상의 박해로 인해 정제되어야 하고 또 천상평화의 영원한 즐거움을 얻으려면 수많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고통의 홍수에다 자신을 활짝 펼쳐 열고 여러 종류의 극기의 채찍으로 사정없이 자기 몸을 벌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단식과 절제행위로 자신을 혹심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많은 이들은 그렇게 연약한 여인이 어떻게 그런 고통들을 견디어 낼 수 있는지 놀라 마지않았다.
계속적인 고통으로 자기 육신을 괴롭히고 (그러나 언제나 분별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밤샘을 하면 할수록 그녀의 영신은 더욱더 견고히 되고 은총에서 한층 더 진보했으며 신심과 천상 사랑의 불이 그녀 안에 점점 더 확대되어 불타 올랐다. 매우 열렬한 갈망으로 드높여지고 하느님 안에로 흡수되어 버려 자기의 몸 감각을 잃어버렸고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곤 했다. 그리고 뜨거운 열성으로 하느님께로 늘 향했을 뿐만 아니라 선업의 열매를 가져다 주는 자비로써 이웃을 돌보는 데 몸 바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너그러이 애긍 시사하였다.
남녀 수도 공동체들에게 - 그들이 수도원 안에서 살건 세상에서 활동 생활을 하든 간에 - 그리고, 과부와 고아들에게, 허약자와 병자들에게, 나병 환자와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순례자들과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난한 여인들에게 도움을 베풀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누가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가 그냥 돌아서게 하는 일을 절대로 허용치 않았다.
이 하느님의 여종은 할 수 있는 한 선행을 등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다음의 한 가지 은총을 주셨다. 선행을 할 인간 지력이 떨어져 자기 역량으로는 그 일을 못하게 될 때 그리스도의 수난의 영능으로써 이웃이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성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육신적 또는 영신적인 고통을 덜고자 자기에게 찾아온 이들을 모두 하느님의 은혜로써 도와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