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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catholic baptismal name)] 보편적 애덕의 어머니이자 캐나다 최초의 성녀 마리아 마르가리타 듀빌(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

by 1살 비오 2023.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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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녀 마리아 마르가리타 듀빌(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
축일(Feast) 10월 16일(16 October)
성인 구분(Saint Type) 성녀(saintess)
시복(Beatified) 1959년 5월 3일(May 3, 1959)
시성(Canonized) 1990년 12월 9일(December 9, 1990)
수호(Patronage) 과부(widows), 어린 자녀의 죽음(death of young children)
신분(Identity) 과부(Widow), 설립자(Founder)
활동지역(activity area) 캐나다(Canada)
활동연도(activity year) 1701-1771년

 

성녀 마리아 마르가리타 듀빌(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은 1701년 10월 15일 캐나다 퀘벡(Quebec)주 몬트리올(Montreal) 교외 바렌(Varennes)에서 태어나 캐나다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성인이 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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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 was born on October 15, 1701 in Varennes, a suburb of Montreal, Quebec, Canada, and was the first Canadian to become a saint.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극심한 가난 속에서 고생하던 그녀는 어머니의 둘도 없는 협조자로서 동생들의 교육을 도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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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father died when she was 7 years old, and she suffered in extreme poverty and As her mother's indispensable collaborator, she took charge of the education of her younger siblings.

 

1722년 성녀 마리아 마르가리타(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프랑수아 듀빌(Francois d'Youville)과 결혼을 하고 시댁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큰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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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722, 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 married Francois d'Youville and began living with her in-laws, which was a great pain.

 

남편이 가정을 꾸려 나가는 데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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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didn't take long for me to realize that my husband had no interest in starting a family.

 

그녀는 남편의 잦은 외박과 인디언과의 불법 주류 거래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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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suffered a lot from her husband's frequent stays out and his illegal liquor trade with Indians.

 

남편이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이미 그녀는 여섯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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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was already pregnant with her sixth child when her husband became seriously ill.

 

결국 1730년 29살의 나이로 남편을 잃은 그녀는 절망적인 가난을 경험하게 되었고, 여섯 명의 자녀 중 네 명이 유아 때 사망하는 고통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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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imately, she lost her husband at the age of 29 in 1730, experienced desperate poverty, and suffered the pain of four of her six children dying as infants.

 

이런 모든 일 중에서도 성녀 마리아 마르가리타(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는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갔고, 모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부드러운 사랑을 더욱 깊이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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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idst all these things, 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 developed her faith in the existence of God in her life and experienced more deeply God's tender love for all human beings.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모든 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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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I wanted to let everyone know about God’s merciful love.

 

그녀는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많은 자선 사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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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id many charitable works with thorough faith and love for her Father God.

 

 

 

훗날 사제가 된 두 명의 아들을 교육하고 눈먼 여성을 집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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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r, she educated two sons who became priests and took a blind woman into her home.

 

그녀는 얼마 가지 않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함께 나눌 세 명의 젊은 여성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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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n't long before she met three young women who shared her love and concern for the poor.

 

1737년 12월 31일 그들은 하느님께 서원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할 것을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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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December 31, 1737, they made a vow to God and promised to serve the poor.

 

그래서 성녀 마리아 마르가리타(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몬트리올의 애덕의 수녀회(Order of Sisters of Charity of Montreal)의 설립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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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s, 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 became the unintentional founder of the Order of Sisters of Charity of Montreal.

 

그녀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위해 사회의 관습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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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out her life, she always fought against social conventions for the rights of the poor.

 

자신의 친척과 이웃들에게 받는 조롱과 비웃음에도 당당하게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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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bravely faced the ridicule and contempt she received from her relatives and neighbors.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힘쓰던 중 공동체의 집이 화재로 전소되고 동료 중 한 명의 죽음을 경험하며 건강이 크게 나빠지기도 했지만 그 모든 일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그녀의 신심을 더 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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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working hard to care for the poor despite many difficulties, her community home was destroyed by fire, she experienced the death of one of her colleagues, and her health deteriorated greatly. However, all of these events further strengthened her faith in dedicating herself to the poor.

 

 

 

2년 후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던 성녀 마리아 마르가리타(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는 다 쓰러져가던 몬트리올의 한 병원을 맡아줄 것을 요청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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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years later, 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 known as the 'Mother of the Poor', was asked to take charge of a hospital in Montreal that was collapsing.

 

그래서 그녀와 동료 수도자들은 그 병원을 재건하여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는데 사용하였다. 동료 수녀들과 평신도 협력자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재단을 설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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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she and her fellow monks rebuilt the hospital and used it to care for the most abandoned. With the help of fellow nuns and lay collaborators, she established a foundation that cared for countless poor people.

 

1765년 발생한 화재로 병원이 파괴하였지만 그녀의 신앙과 용기마저 파괴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동료 수녀들과 병원에서 지내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앙 안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보고 찬미 드리기를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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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ire in 1765 destroyed the hospital, but it did not destroy her faith and courage. She asked her fellow nuns and the poor people living in the hospital to recognize and praise God's hand that is with them even in disasters.

 

64살의 나이에 그녀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쉼터의 재건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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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age of 64, she took on the task of rebuilding a shelter for those in need.

 

인생 전체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을 내어준 성녀 마리아 마르가리타(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는 결국 지친 몸을 이끌고 1771년 12월 23일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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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Marie-Marguerite d'Youville, who gave herself to the poor throughout her life, died on December 23,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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