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Pope Saint John Paul II) |
축일(Feast) | 10월 22일(22 October)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인(Saint) |
시복(Beatified) | 2011년 5월 1일(1 May 2011) |
시성(Canonized) | 2014년 4월 27일(27 April 2014) |
수호(Patronage) | 폴란드(Poland), 세계청년대회(Young Catholics Families) |
신분(Identity) | 교황(Pope) |
활동지역(activity area) | |
활동연도(activity year) | 1920-2005년 |
1920년 5월 18일 폴란드에서 탄생한 요한 바오로 2세는 둘째 아들로 태어나 세례를 받았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은 그는 9살 때 첫영성체를 하고 18살 때 견진성사를 받았다.
Born in Poland on May 18, 1920, John Paul II was baptized as the second son. After experiencing the pain of losing his beloved family during his childhood and adolescence, he received his First Holy Communion at the age of 9 and the Sacrament of Confirmation at the age of 18.
1939년 9월 나치 세력에의해 폴란드가 점령당하자 젊은 요한 바오로 2세는 독일군으로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석회암 채석장과 화학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When Poland was occupied by the Nazis in September 1939, young John Paul II had no choice but to make a living by working in limestone quarries and chemical factories to avoid being drafted into the German army.
그러면서 사제 성소를 발견한 요한 바오로 2세는 1942년부터 아담 사피에하(Adam Sapieha) 대주교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신학교에서 사제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다.
Meanwhile, John Paul II, who discovered the priestly vocation, began receiving priestly training at a seminary secretly run by Archbishop Adam Sapieha in 1942.
종전 이후 요한 바오로 2세는 학업을 계속하여 1946년 11월 1일 아담 사피에하(Adam Sapieha) 추기경으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After the end of the war, John Paul II continued his studies and was ordained a priest by Cardinal Adam Sapieha on November 1, 1946.
그 후 아담 사피에하(Adam Sapieha) 추기경은 그를 로마로 보내 계속해서 공부하도록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학이 되면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있는 폴란드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하였다.
Afterwards, Cardinal Adam Sapieha sent him to Rome to continue his studies. During his vacation, John Paul II carried out pastoral activities targeting Polish immigrants in France, Belgium, and the Netherlands.
1948년 여름에 폴란드로 돌아온 그는 성 플로리아누스(Florianus) 성당에서 본당신부로 사목하였다.
He returned to Poland in the summer of 1948 and served as a parish priest at the Cathedral of St. Florianus.
1958년 7월 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그를 크라쿠프(Kraków) 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하였고 그는 1958년 9월 28일 대주교에게서 주교품을 받으며 38세로 폴란드에서 가장 젊은 주교가 되었다.
On July 4, 1958, Pope Pius XII appointed him auxiliary bishop of the Diocese of Kraków and He received his episcopal ordination from the Archbishop on September 28, 1958, becoming the youngest bishop in Poland at the age of 38.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는 1963년 12월 30일 그를 크라쿠프(Kraków)의 대주교로 임명하였고, 1967년 6월 26일에는 추기경으로 임명하였다.
Pope Saint Paul VI appointed him Archbishop of Kraków on December 30, 1963, and cardinal on June 26, 1967.
그는 또한 교황직에 오르기 전까지 세계주교대의원회의(Synod of Bishops)의 다섯 번의 회의 중 네 번을 참석하였다.
He also attended four of the five meetings of the Synod of Bishops before becoming pope.
그는 1978년 10월 16일 제264대 교황으로 선출됨으로써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Hadrianus VI) 이래 455년 만의 이탈리아인이 아닌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인 교황이 되었다.
He was elected as the 264th Pope on October 16, 1978, becoming the first non-Italian Pope in 455 years and the first Slavic Pope.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7년간 사도좌 직무를 수행하면서 이탈리아에서 146회의 사목 방문을 하고, 로마 교구장으로서 로마의 332개 본당 중 317개의 본당을 방문하였다.
Pope St. John Paul II made 146 pastoral visits to Italy while serving as the Apostolic See for 27 years, and as bishop of the Diocese of Rome, he visited 317 of Rome's 332 parishes.
1981년 5월 1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신자들과 만나는 도중 괴한의 습격을 받아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On May 13, 1981, Pope St. John Paul II was attacked by a gunman and fell to the ground after being shot while meeting with believers in St. Peter's Square.
성모님의 자애로운 손길 덕분에 총알이 그의 심장을 살짝 비켜 가서 목숨을 구한 그는 대수술 후 오랜 회복기를 거친 다음 암살 미수범이 있는 교도소를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그를 용서하였다.
Thanks to the Virgin Mary's kind hand, the bullet missed his heart and saved his life. After a long recovery after major surgery, he personally visited the prison where the attempted assassin was, talked to him, and forgave him.
그리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새 삶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더욱 영웅적 덕행을 발휘하며 사목 활동에 힘을 쏟았다.
And as a sign of gratitude for the new life that God had granted him, he demonstrated even more heroic virtue and devoted himself to pastoral work.
그는 목자로서 신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많은 교구를 설립했고 그는 또한 신앙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s)를 제정하였다.
As a shepherd, he established many dioceses to care for believers, and he also established World Youth Days to attract young people's interest in faith.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만큼 사람들을 많이 만난 교황은 없을 것이다. 1996년부터 파킨슨병을 비롯한 여러 합병증으로 고생하던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 교황궁에서 2005년 4월 2일 토요일 오후 9시 37분에 선종하였다.
No other Pope has met as many people as Pope Saint John Paul II. Pope St. John Paul II, who had been suffering from Parkinson's disease and other complications since 1996, died at 9:37 p.m. on Saturday, April 2, 2005, at the Vatican Palace.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선종한 그는 4월 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장례미사 뒤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지하 무덤에 묻혔다.
"I am happy. He died after leaving his last will, “Be happy, too.” He was buried in the underground tomb of St. Peter’s Basilica in the Vatican after a funeral mass held in St. Peter’s Square on April 8.
1984년 5월 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미사와 한국 103위 순교복자 시성식을 거행했다. 이는 시복 시성식을 바티칸에서 거행하는 교회의 오랜 전통을 깬 파격이기도 했다.
On May 3, 1984, Saint John Paul II became the first pope to visit Korea, and on the 6th, a mass commemorating the 200th anniversary of the Catholic Church in Korea and the canonization ceremony for Korea's 103rd Blessed Martyr were held at Yeouido Square in Seoul, attended by over 1 million people. This was also an unprecedented break with the church's long tradition of holding beatification and canonization ceremonies at the Vatican.
1989년 10월 5일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맞아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65만여 명이 운집한 여의도 광장에서 남북한의 화해를 바라는 평화 메시지를 낭독했고, 5·18 광주 민중항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On October 5, 1989, he visited Korea again for the 44th World Eucharistic Congress and read a peace message wishing for reconciliation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at Yeouido Square, where about 650,000 people gathered, and commemorated the victims of the May 18 Gwangju Uprising.
두 번에 걸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은 한국 천주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Pope St. John Paul II's two visits to Korea had a great impact on the rapid growth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