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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catholic baptismal name)] 가톨릭 선교의 수호성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int Francis Xavier)

by 1살 비오 2023.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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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int Francis Xavier)
축일(Feast) 12월 3일(3 December)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1619년 10월 25일(25 October 1619)
시성(Canonized) 1622년 3월 12일(12 March 1622)
수호(Patronage) 가톨릭 선교사(catholic missionary)
신분(Identity) 신부(priest), 선교사(missionary)
활동지역(activity area)  
활동연도(activity year) 1506-1552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int Francis Xavier)는 1506년 에스파냐에서 영향력 있는 귀족 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1512년 에스파냐의 침공으로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가문도 몰락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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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Francis Xavier was born in Spain in 1506 into an influential noble family. However, his father died when he was nine years old due to the Spanish invasion in 1512, and his family fell into decline.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int Francis Xavier)는 열아홉이 되던 1525년에 몰락한 가문을 살리기 위해 프랑스 파리(Paris)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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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525, when he was 19, Saint Francis Xavier went to Paris, France to save his fallen family.

 

그는 명문 파리 대학교에서 공부했는데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Saint Ignatius)와 함께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나이가 많은 성 이냐시오(Saint Ignatius)는 그가 사제가 되기를 바랐지만, 몰락한 가문을 세우기 위해 세속적 출세를 열망하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int Francis Xavier)를 설득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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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studied at the prestigious University of Paris, where he shared a room with Saint Ignatius of Loyola. The older Saint Ignatius wanted him to become a priest, but he could not persuade Saint Francis Xavier, who was eager for worldly success to build up his fallen family. 

 

하지만 나중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int Francis Xavier)도 생각을 바꾸어 예수회(Society of Jesus)의 설립회원 7명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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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ever, Saint Francis Xavier later changed his mind and became one of the seven founding members of the Society of Jesus.

 

그는 성 이냐시오(Saint Ignatius)와 함께 1537년 이탈리아베네치아(Venezia)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다음 해에 로마(Roma)로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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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ordained a priest in Venice, Italy in 1537 along with Saint Ignatius and was dispatched to Roma the following year.

 

당장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기가 불가능해지자 그와 동료들은 선교에 대해서 교황에게 순명하는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해 교황의 승인을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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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it became impossible to immediately make a pilgrimage to the Holy Land in Jerusalem, he and his colleagues decided to establish a new religious order that would obey the Pope for missionary work and receive approval from the Pope.

 

 

이렇게 해서 1540년 9월 27일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에 의해 예수회(Society of Jesus)의 탄생이 승인되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int Francis Xavier)는 선교사로 임명되어 동인도로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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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way, the birth of the Society of Jesus was approved by Pope Paul III on September 27, 1540. Saint Francis Xavier was appointed as a missionary and sent to the East Indies. 

 

5개월 동안은 병자와 죄수들을 찾아보는 일과 어린이의 신앙교육 및 그곳에 있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비도덕성을 바로잡는 일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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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five months, he undertook to visit the sick and prisoners, educate children in their faith, and correct the immorality of the Portuguese people there.

 

그 후 그는 인도에서 3년을 지내면서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1549년부터 1551년에는 일본까지 왕래하며 왕성한 선교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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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then spent three years in India, winning thousands of converts. From 1549 to 1551, he traveled to Japan and engaged in vigorous missionary activities. 

 

 

 

그는 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들어가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우고 중국인 청년과 함께 출발했다. 광둥항으로 들어가는 배를 수소문하던 중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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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planned to go to Japan and then China to preach the gospel and set out with a Chinese young man. While searching for a ship entering Guangdong Port, he contracted a fever. 

 

결국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int Francis Xavier)는 1552년 12월 3일, 중국 본토까지 불과 14km의 뱃길을 남겨두고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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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end, Saint Francis Xavier died on December 3, 1552, leaving only a 14km sea route to mainland China.

 

그는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상상할 수 없는 거리와 지역을 여행했고, 그가 개종시킨 교우 수만 해도 10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인도의 사도’ 또는 ‘일본의 사도’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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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overcame countless dangers and adversities and traveled unimaginable distances and regions, and it is estimated that the number of believers he converted reached over 100,000. That is why he is called ‘the Apostle of India’ or ‘the Apostle of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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