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성 요한 칸시오 (Saint John Cantius) |
축일(Feast) | 12월 23일(23 December)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인(Saint) |
시복(Beatified) | 1676년 3월 28일(28 March 1676) |
시성(Canonized) | 1767년 |
수호(Patronage) | 폴란드(Poland), 리투아니아(Lithuania) |
신분(Identity) | 신부(priest), 성서학자(biblical scholar) |
활동지역(activity area) | 켕티(Kenty) |
활동연도(activity year) | 1390-1473년 |
성 요한 칸시오 (Saint John Cantius)는 1390년 6월 23일 폴란드에서 부유한 부모님에게서 태어났고 크라쿠프(Krakow) 대학에 입학하여 1417년에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Saint John Cantius was born to wealthy parents in Poland on June 23, 1390, entered the University of Krakow, received a master's degree in literature in 1417, and immediately began teaching at the university.
1439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모교에서 성서 강의를 맡았다. 1443년경에 그는 터키에서 순교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예루살렘을 순례했으며 네 차례에 걸쳐 로마(Roma)를 걸어서 순례하였다.
After being ordained a priest in 1439, he taught Bible lectures at his alma mater. Around 1443 he made a pilgrimage to Jerusalem in the hope of becoming a martyr in Turkey and made four pilgrimages to Rome on foot.
그는 설교로 매우 유명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비해 명성이 너무 높아 그만큼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였다.
He was very famous for his sermons. However, because his reputation was so high compared to his young age, there were many people who were jealous of him. He had no choice but to resign from his position.
영혼들을 돌보는 사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는 재차 크라쿠프 대학의 성서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선종할 때까지 평생 동안 대학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면서 16권의 방대한 강의록을 남겼다.
Unable to shake off his sense of duty to care for souls, he was again appointed professor of Biblical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Krakow. He taught biblical studies at universities throughout his life until his death, leaving behind 16 volumes of extensive lecture notes.
성 요한 칸시오(Saint John Cantius)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
(Famous anecdotes related to Saint John Cantius)
어느 날 성 요한 칸시오(Saint John Cantius)는 길을 가던 중 강도를 만났다. 강도는 그가 가진 것을 다 빼앗은 뒤 더 가진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게 전부라고 대답했고 강도는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뒤 그는 몸을 추스르면서 외투 안쪽 주머니에 있던 동전 몇 닢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이 강도에게 가진 것이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그는 도망가는 강도를 뒤쫓아 내가 아까 가진 것이 없다 했는데 여기 동전 몇 닢이 더 있었다고 말했다.
기가 막힌 강도는 오히려 성인에게 자신이 빼앗은 것 전부를 돌려주고 떠났다.
켕티의 성 요한 칸시오(Saint John Cantius) 사제 독서기도(2 febr. 1767: Bullarii romani continuatio, IV, pars II, Pratis 1843, pp.1314-1316)
그가 입으로 전한 하느님과 그의 마음속에 계신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셨습니다.
켕티의 복된 요한은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고 이단자들이 공격하던 정통 신앙을 옹호함으로써 그 가르침과 거룩함에서 뛰어났던 지극히 훌륭한 이들의 반열에 드는 사람임을 의심하는 이가 없습니다. 그 근방에 이단자들과 분열주의자들이 우글대던 가운데 그는 크라쿠프 대학교에서 가장 순수한 원천으로부터 받은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겸손과 정결, 자비와 극기 그리고 거룩한 사제와 열의에 찬 선교사들이 지니고 있는 온갖 덕행을 가짐으로써 자신이 백성들에게 행한 강론에서 열렬히 설명했던 윤리 교리를 확증했습니다.
그래서 복된 요한은 그 대학의 교수들에게 영예와 영광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와 같은 사명을 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놀라운 모범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학자가 되는 데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되고 또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영광을 위해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께 대한 지식과 다른 모든 학문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온갖 노력을 해야 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거룩한 주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 그 내용에 대한 공경심과 함께 자신의 깊은 겸손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식 면에서 다른 모든 이들을 앞섰지만 자신을 다른 이들보다 더 경천히 여기고 자신을 아무에게도 앞세우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모든 이들로부터 멸시당하고 무시당하기를 원했고 자신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이들을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대했습니다. 이 겸손과 더불어 성 요한은 거의 어린이와 같은 뛰어난 단순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과 말에는 어떤 애매 모호성이나 가식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입으로 밝히 전했습니다. 진리를 가르치다가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생각할 때에는 미사를 봉헌하기 전 자신의 오류에 앞서 타인의 오류에 대해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낮에는 자기 과업을 마친 후 강의실에서 곧장 성당으로 가 성체 안에 숨어 계신 그리스도 앞에서 기도와 관상에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가 입으로 전한 하느님과 그의 마음속에 계신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