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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catholic baptismal name)] 고아들의 어머니 성녀 바울라 엘리자베타 체리올리(Saint Paola Elisabetta Cerioli)

by 1살 비오 2023.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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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녀 바울라 엘리자베타 체리올리(Saint Paola Elisabetta Cerioli)
축일(Feast) 12월 24일(24 December)
성인 구분(Saint Type) 성녀(Saintess)
시복(Beatified) 1950년 3월 19일(19 March 1950)
시성(Canonized) 2004년 5월 16일(16 May 2004)
수호(Patronage) 성가정 수녀회(Institute of Sisters of the Holy Family)
신분(Identity) 과부(Widow), 설립자(founder), 수녀원장(abbess)
활동지역(activity area)  
활동연도(activity year) 1816-1865년

 

성녀 바울라 엘리자베타 체리올리(Saint Paola Elisabetta Cerioli)는 1816년 1월 28일 이탈리아 귀족 출신의 부모에게서 막내딸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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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Paola Elisabetta Cerioli was born as the youngest daughter of Italian noble parents on January 28, 1816.

 

그녀는 어려서부터 병약했기 때문에 11살까지 집에서 머물다가 비로소 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집을 떠난 외로움으로 큰 고통을 겪었지만 그녀가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살고 홀로 위안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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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she was sickly from a young age, she stayed at home until she was 11 and only then did she go to school. There she suffered greatly from the loneliness of being away from home, but God helped her to live and find solace in solitude. 

 

아내를 잃고 홀로 된 백작이 그녀의 남편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이를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결혼하였다. 19년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남편의 까다로운 성격과 좋지 않은 건강 때문에 힘들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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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unt, who had lost his wife and was left alone, was chosen to be her husband. She knew this was God's will and married him. During her 19 years of marriage, she suffered from her husband's difficult personality and poor health. 

 

그리고 3명의 자녀가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장 큰 위안이었던 아들 카를로(Carlo)마저 16살까지밖에 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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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only did three of her children die at very young ages, but even her son Carlo, who was her greatest comfort, only lived to be 16.

 

1854년 1월 심각한 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카를로는 마지막으로 예언과도 같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하느님께서 다른 아이들을 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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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January 1854, Carlo, who was on the verge of death due to a serious illness, left the world with his last prophetic words. “Mother, don’t cry. God will give you other children.” 

 

게다가 그해가 끝날 무렵에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는 인생이 무의미하고 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아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그녀를 이끄는 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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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over, at the end of that year, her husband passed away. She thought life was meaningless and vain, but her son's last words became her guiding light. 

 

그래서 그녀는 영적 지도를 찾았고 자신의 모든 비극과 생애 전체를 하느님의 손길에 내어맡기며 신앙의 힘으로 살기 위한 하느님의 은총을 끊임없이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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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she sought spiritual guidance, surrendered all her tragedies and her entire life to God's hands, and constantly asked for God's grace to live by the power of faith.

 

그녀는 아들 카를로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의 모성을 표현하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을 계속해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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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continued to feel the desire to express her motherhood and give of herself to others, as she had done to her son Carlo.

 

그래서 그녀는 병든 이들을 찾아 돕고 가난한 이와 고아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나눠주기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고아들의 두려움에 젖은 눈은 그녀가 더욱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도록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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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she began helping the sick and giving away her wealth to the poor and orphans. The fearful eyes of orphans begging on the streets led her to make even more courageous decisions. 

 

그녀는 자신의 재산과 모든 소유를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그녀의 집에 고아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문과 이웃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하며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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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gave all her property and everything she owned to the poor and began accepting orphans into her home. Her family and neighbors thought she was crazy and didn't realize what she was doing.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보석까지 팔아 고아원을 위한 물품을 구입하였다. 그녀는 모든 재물을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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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ever, she even sold her jewelry to buy supplies for the orphanage. She made a more important decision than sharing all her wealth. 

 

하느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봉헌하기 위해 1856년 12월 15일 영속적인 정결 서원을 했고, 1857년 2월 8일 가난과 순명의 서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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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other words, in order to completely consecrate himself to God, he made a vow of permanent chastity on December 15, 1856, and a vow of poverty and obedience on February 8, 1857.

 

곧이어 다른 젊은 여성들이 그녀와 함께하기를 소망하여 그녀의 자선사업에 기꺼이 참여하였다. 1857년 12월 8일 이탈리아의 코몬테(Comonte)에서 성가정 수녀회(Institute of Sisters of the Holy Family)를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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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 other young women wanted to join her and willingly participated in her charity work. On December 8, 1857, the Institute of Sisters of the Holy Family was founded in Comonte, Italy. 

 

그녀는 수녀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고 부모 없는 아이들의 교육과 가난의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그녀는 1865년 12월 24일 49살의 나이에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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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evoted herself to the growth and development of the Congregation and paid great attention to the education of parentless children and the problem of poverty. She died at the age of 49 on December 24, 186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녀의 시성식에서 하신 말씀
(Pope John Paul II's remarks at her canonization ceremony)


“나자렛 성가정을 묵상하면서 성녀 파올라 엘리사베타 수녀는, 신앙의 가치와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방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알려주고 공감할 때 그들 사이에 결속력이 유지 · 강화되며, 이를 토대로 가정은 튼튼한 반석 위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오늘 새로 성녀가 된 파올라 엘리사베타 수녀는 이러한 가치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성가정 수도회를 창설하였습니다. 성녀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자립적인 사람으로 자라나려면 가족들이 건강하고 서로 일치해 있으며, 서로가 너그럽게 대하는 안정된 분위기의 가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 가정을 축복해 주시어 이 가정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을 잘 받아들이고 이를 증거하는 가정이 되도록 돌보아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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