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만인의 고해신부 복자 세바스티아노 발프레(Blessed Sebastian Valfrè)

by 1살 비오 2024. 1. 16.
반응형

↑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복자 세바스티아노 발프레(Blessed Sebastian Valfrè)
축일(Feast) 1월 30일(30 January)
성인 구분(Saint Type) 복자(Blessed)
시복(Beatified) 1834년 7월 15일(15 July 1834)
시성(Canonized)  
수호(Patronage)  
신분(Identity) 신부(priest)
활동지역(activity area) 토리노(Torino)
활동연도(activity year) 1629-1710년

 

 

복자 세바스티아노 발프레(Blessed Sebastian Valfrè)는 이탈라아의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소년 때에 이미 사제가 될 결심을 했다.
더보기

Blessed Sebastian Valfrè was born into a very poor family in Italy, but as a boy he decided to become a priest. 

 

그는 남의 책을 베껴가면서 부모님 몰래 공부하였다. 그가 토리노(Torino)로 공부하러 갈 떄 집에서 준 것은 포도주가 전부였다고 한다.
더보기

He studied without his parents' knowledge by copying other people's books. It is said that when he went to study in Torino, all he gave him at home was wine.

 

그는 1651년에 토리노(Torino)오라토리오회(Oratorians)에 입회하여 사제가 되었는데, 첫미사는 그의 부모를 위로하기 위하여 고향 성당에서 지냈다.
더보기

He joined the Oratorians of Torino in 1651 and became a priest, and held his first mass at his hometown church to comfort his parents.

 

그의 첫 임무는 어느 작은 성당(ecclesia)의 책임자로서 신심생활을 지도하는 일이었다. 그 후 그는 토리노 사람들을 섬기면서 병자들을 돌보고 깊은 통찰력을 지닌 고해사제로 명성을 얻었다.
더보기

His first task was to lead a religious life as the director of a small church (ecclesia). Afterwards, he served the people of Torino, caring for the sick and gaining a reputation as a confessor with deep insight.

 

그의 명성은 영혼의 지도에서 얻어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고해소에서 지낸 그는 자기 공동체 회원들뿐만 아니라 만인의 고해신부였다.
더보기

His fame came from his guidance of souls. He spent most of his time in the confessional and was a confessor not only for members of his community but also for everyone. 

 

그는 영적인 직관력이 뛰어났고 남의 마음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불신앙과 무관심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더보기

He had excellent spiritual intuition and could read other people's minds, as well as keenly detect disbelief and indifference. 

 

그는 자신이 예언한 날에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때 그의 나이는 81세였다.
더보기

He was embraced by God on the day he prophesied. He was 81 years old at that tim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