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천주의 성 요한(Saint John of God) |
축일(Feast) | 3월 8일(8 March)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인(Saint) |
시복(Beatified) | 1630년 9월 21일(September 21, 1630) |
시성(Canonized) | 1690년 10월 16일(October 16, 1690) |
수호(Patronage) | 서점(Booksellers), 병원(hospitals), 간호사(nurses), 정신질환자(the mentally ill), 심장병 환자(heart patients), 임종자(the dying) |
신분(Identity) | 설립자(Founder) |
활동지역(activity area) | |
활동연도(activity year) | 1495-1550년 |
천주의 성 요한(Saint John of God)은 1495년 3월 8일 포르투갈에서 태어났다. 부유하지는 않아도 신심 깊은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8살 때에 한 순례자를 따라 가출하였다.
Saint John of God was born in Portugal on March 8, 1495. Although he was not wealthy, he spent his childhood in a devout family, and at the age of eight he ran away from home to follow a pilgrim.
순례자를 따라 에스파냐까지 간 그는 갈 곳도 머물 곳도 없는 신세로 방황하다가 농부의 집에 받아들여져 그곳에서 일하며 생활하게 되었다.
He followed the pilgrims to Spain and wandered around without a place to go or stay until he was taken in by a farmer and began working and living there.
그는 글공부와 허드렛일을 익혀 가며 세례를 받았고, 학교 공부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가축을 돌보는 일을 하며 양치기 목동으로 살았다.
He was baptized while learning to read and do odd jobs, and after finishing his school studies, he returned home and lived as a shepherd, taking care of livestock.
농부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그가 자기 딸과 결혼해 상속자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결혼을 원치 않았던 그는 에스파냐를 방어하는 전투에 참여하였다.
The farmer wanted the sincere and diligent man to marry his daughter and become his heir. However, he did not want to get married and participated in the battle to defend Spain.
이후 군대 생활을 마친 그는 감사기도를 드리기 위해 성지순례를 떠났다. 그런데 이 순례가 그의 인생에 새로운 장을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
After completing his military service, he went on a pilgrimage to offer thanksgiving prayers. However, this pilgrimage became the starting point for a new chapter in his life.
성지순례를 마친 그는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책과 십자가, 성물 등을 파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1539년 1월 20일 그는 한 신부의 강론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아 회심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After completing his pilgrimage, he opened a small shop and made a living selling books, crosses, and holy relics. On January 20, 1539, he listened to a priest's sermon and was so impressed that he began a life of conversion.
그런데 그의 이런 변화를 지켜본 주변 사람들은 그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왕립 병원으로 데려갔고, 열악한 시설의 병원에서 그는 모진 시련을 겪어야 했다.
However, people around him who saw this change in him thought he was mentally ill and took him to the Royal Hospital, where he had to undergo a harsh ordeal.
그는 퇴원하자마자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으며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그리고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 성지를 순례했는데 그곳에서 수도자들이 운영하는 병원과 의하 학교에서 병자 간호와 병원 운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배웠다.
As soon as he was discharged from the hospital, he devoted himself to prayer and meditation under the spiritual guidance of a priest. I then made a pilgrimage to the Virgin Mary of Guadalupe, where I learned the basics of nursing the sick and operating a hospital at a hospital and medical school run by monks.
돌아온 그는 ‘자선의 집’을 개원했다.
Upon his return, he opened the ‘House of Charity’.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오면 예수님께서 사랑과 봉사의 의미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었던 것처럼 그들의 발을 씻어주고 환대의 정신으로 맞이하였다.
When the poor came, he washed their feet and welcomed them with a spirit of hospitality, just as Jesus washed the feet of his disciples out of love and service.
그는 환자들이 따뜻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충분히 먹고 치료받으며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He did his best to ensure that patients lived in a warm and clean environment, received sufficient food, received treatment, and were treated with humanity.
주교의 인정과 그의 헌신 덕분에 재산가와 귀족과 왕족들도 그의 자선사업을 위해 많은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심장 울혈증과 관절염, 안구 이상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으나 쉬지 않고 일하였다.
Thanks to the bishop's recognition and his dedication, wealthy people, nobles, and royal families also gave much support and support to his charity work. He was suffering from heart congestion, arthritis, and eye problems, but he worked without stopping.
게다가 그는 겨울에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병을 얻어 결국 1550년 3월 8일, 자신이 태어난 날에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선종하였다.
Moreover, he got sick after jumping into the river to save a child in the winter, and eventually died kneeling with a cross on his chest on March 8, 1550, the day he was born.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제자들에 의해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Brothers Hospitallers of Saint John of God)가 설립되었다.
The Brothers Hospitallers of Saint John of God were founded by his disciples who inherited his spirit.
이 수도회는 전 세계, 특히 개발도상국 등에 많은 병원을 열고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This religious order has opened many hospitals around the world, especially in developing countries, and is devoting itself to serving the sick, poor, and underprivile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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