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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가난, 청빈, 봉사, 사랑의 사목자” 성 클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Saint Clement Mary Hofbauer)

by 1살 비오 2024.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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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클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Saint Clement Mary Hofbauer)
축일(Feast) 3월 15일(15 March)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1888년 1월 29일(29 January 1888)
시성(Canonized) 1909년 5월 20일(20 May 1909)
수호(Patronage)  
신분(Identity) 신부(Priest), 선교사(Missionary)
활동지역(activity area)  
활동연도(activity year) 1751-1820년

 

 

성 클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Saint Clement Mary Hofbauer)는 체코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빵 굽는 기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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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Clement Mary Hofbauer was born in the Czech Republic and learned the art of baking bread from an early age. 

 

비록 어려운 생활을 하였으나 그는 항상 은수자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얼마 동안은 방랑생활을 하다가 수도원에서 빵 굽는 일을 하다가 마침내 은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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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hough he had a difficult life, he always had a dream of becoming a hermit. After living a wandering life for some time, he worked as a baker in a monastery and eventually became a hermit. 

 

그러나 신성 로마제국의 요제프 2세(Joseph II) 황제가 은수소들을 폐쇄하였을 때, 그는 빈으로 돌아와서 다시 빵 굽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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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en Emperor Joseph II closed the silver mills, he returned to Vienna and became a baker again. 

 

그는 그 후 빈과 로마 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구속주회(Redemptorists)에 입회하여 1785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20여 년 간 선교활동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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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then studied at the universities of Vienna and Rome, joined the Redemptorists, and was ordained a priest in 1785. After that, he achieved great success through missionary work for over 20 years. 

 

그는 늘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일했으며 고아원과 학교를 세웠다. 그는 빈에 가톨릭 대학을 설립하였고, 독일 지역의 수도생활 재건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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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always worked with the poor and established orphanages and schools. He established a Catholic university in Vienna and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reconstruction of monastic life in Germany. 

 

그는 1820년 3월 15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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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died on March 15, 1820 in Vienna, Aust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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