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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건축업자와 건설 노동자들의 수호성인” 성 빈첸시오 페레르(Saint Vincent Ferrer)

by 1살 비오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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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빈첸시오 페레르(Saint Vincent Ferrer)
축일(Feast) 4월 5일(5 April)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시성(Canonized) 1455년 6월 3일(3 June 1455)
수호(Patronage) 건축업자(Builders), 건설 노동자(Construction workers), 배관공(Plumbers), 어민(Fishermen), 죄수들(Prisoners)
신분(Identity) 신부(Priest), 설교가(Preacher)
활동지역(activity area)  
활동연도(activity year) 1350-1419년

 

 

성 빈첸시오 페레르(Saint Vincent Ferrer)는 1350년 1월 23일 에스파냐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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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Vincent Ferrer was born in Spain on January 23, 1350. 

 

탄생과 관련한 전설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꿈에서 도미니코회 수도자(Dominican friar)에게 자기 아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리라는 말을 들었고, 그의 어머니는 산고를 경험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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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rding to the legend surrounding his birth, his father was told in a dream by a Dominican friar that his son would become world-famous, and his mother experienced no labor pains. 

 

어려서부터 신앙 안에서 성장하며 교회에 자신을 봉헌할 결심을 한 그는 1367년에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있는 도미니코회(Dominican Order)에 입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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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up in faith from a young age, he decided to dedicate himself to the church, and in 1367, despite his father's opposition, he joined the Dominican Order in his hometown. 

 

1373년부터 그는 신학을 공부를 시작했고 1379년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1384년부터 신학을 가르쳤고 1389년에는 신학 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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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373, he began studying theology and was ordained a priest in 1379. Afterwards, he taught theology from 1384 and became professor of theology in 1389. 

 

흑사병으로 인한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인 1378년 대립교황이 출현하면서 서구 교회를 크게 분열시킨 사건은 그에게 큰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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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mergence of an antipope in 1378, before the chaos caused by the Black Death had subsided, was a great ordeal for him, an event that greatly divided the Western church. 

 

그는 로마의 교황 우르바누스 6세의 선출이 무효라 확신했고 아비뇽에 머무는 클레멘스 7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그는 에스파냐 전역을 순회하며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충성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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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convinced that the election of Pope Urban VI of Rome was invalid and actively supported Pope Clement VII, who was staying in Avignon. He traveled throughout Spain persuading people to remain loyal to Pope Clement VII. 

 

그는 로마와 아비뇽의 교황이 모두 사임하고 후계자를 선출함으로써 교회의 분열과 분리를 끝내기를 희망했다. 이후 그는 20여 년 동안 여러 곳을 순회하며 활발한 설교 활동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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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hoped to end the divisions and divisions in the church by having both the popes of Rome and Avignon resign and elect successors. Afterwards, he toured various places and carried out active preaching activities for over 20 years. 

 

그는 활발한 순회 설교 중에도 교회의 분열을 걱정하며 교회 일치를 위해 베네딕투스 13세의 사임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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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during his lively preaching tour, he was concerned about divisions in the church and tried to persuade Pope Benedict XIII to resign for the sake of church unity.

 

1417년 콘스탄츠 공의회는 마르티누스 5세를 새 교황으로 선출함으로써 서구 교회의 분열은 정식으로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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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417, the Council of Constance officially ended the division in the Western Church by electing Martin V as the new pope. 

 

그는 1419년 4월 5일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백년전쟁을 끝내도록 설득하는 설교를 하던 중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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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died on April 5, 1419, while delivering a sermon persuading people to end the Hundred Years' War between France and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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