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코르닐롱산의 성녀 율리아나(Saint Juliana of Mount-Cornillon) |
축일(Feast) | 4월 6일(6 April)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녀(Saintess) |
시복(Beatified) | |
시성(Canonized) | 1869년 |
수호(Patronage) | |
신분(Identity) | 신비가(Mystic), 수녀(Nun) |
활동지역(activity area) | 코르닐롱산(Mount Cornillon) |
활동연도(activity year) | 1192 or 3-1258년 |
코르닐롱산의 성녀 율리아나(Saint Juliana of Mount-Cornillon)는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Saint Juliana of Mount-Cornilon was born in Belgium.
그녀는 다섯 살 때 고아가 되어 아우구스티누스 수녀회(Augustinian nuns) 수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다.
She was orphaned at the age of five and grew up with the help of nuns of the Augustinian nuns.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기도와 봉헌 생활을 접하고 수녀들의 봉사활동을 거들며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던 그녀는 13살에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She was naturally exposed to prayer and consecrated life from a young age, helped the nuns in their volunteer work, and cared for the sick and the poor. She entered a convent at the age of 13.
또한 일찍이 성체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이미 10대 때에 여러 차례 기도 중에 성체 환시를 경험했다.
In addition, she had a deep devotion to the Eucharist from an early age and experienced visions of the Eucharist several times while praying as a teenager.
반복되는 환시를 통해 그녀는 성체 축일 제정을 원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약 20여 년 동안 비밀로 간직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Through repeated visions, she wanted to establish the Feast of the Eucharist, but there was nothing she could do, so she kept it a secret for about 20 years and quietly bided her time.
그녀는 수녀원장으로 선출된 후 조심스럽게 자신의 환시 내용을 기초로 성체 축일을 만들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After being elected as the head of a convent, she carefully pursued activities to create the Feast of the Eucharist based on the contents of her vision.
먼저 자신의 고해 사제에게 환시 사실을 고백했고, 이어 여러 신학자와 주교들과 접촉하며 환시의 진실성을 확인해 갔다.
She first confessed the vision to her confessor, and then contacted several theologians and bishops to confirm the truth of the vision.
그러면서 이런저런 오해도 받고 제재를 당하기도 했지만, 마침내 리에주의 주교가 1246년 교구 내에서 처음으로 ‘주님의 성체 성혈 축일’을 제정해서 전례 중에 기념했다.
At the same time, there were various misunderstandings and sanctions, but finally, in 1246, the Bishop of Liège established the ‘Feast of the Body and Blood of the Lord’ for the first time in the diocese and celebrated it during the liturgy.
그러나 그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도 규칙을 도입해 엄격한 규율을 되살리려고 했지만, 성직매매(Simony)로 사제가 된 한 성직자의 모함으로 수녀회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However, she tried to revive strict discipline by introducing the monastic rule of St. Augustine, but she ended up being expelled from the convent after being framed by a priest who became a priest through simony (Simony).
그녀는 일단 다른 지역으로 피신해 지내면서 모든 상황을 기도로 용서하고 참아냈다. 그 후 지인의 도움으로 은수자로 살면서 여생을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축일 제정과 보급을 위해 애쓰며 성체 신심을 현양하고자 노력했다.
She first took refuge in another area and forgave and endured all situations through prayer. Afterwards, with the help of an acquaintance, he lived as a hermit and spent the rest of his life striving to establish and spread the Feast of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and to promote devotion to the Eucharist.
그녀는 1258년 4월 5일 평화로이 선종하였다.
She died peacefully on April 5, 1258.
'[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 > [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주교 세례명] “음악가의 수호성인” 복자 노트케르 발불로(Blessed Notker Balbulus) (0) | 2024.03.05 |
---|---|
[천주교 세례명] “슬픔과 좌절 속에서도 사랑을 실천한” 성녀 갈라(Saint Galla) (0) | 2024.03.04 |
[천주교 세례명] “남편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켄트의 성녀 에텔부르가(Ethelburga of Kent) (0) | 2024.03.04 |
[천주교 세례명] “건축업자와 건설 노동자들의 수호성인” 성 빈첸시오 페레르(Saint Vincent Ferrer) (0) | 2024.03.03 |
[천주교 세례명] “가난의 수모를 인내와 겸손으로 극복한” 성녀 마리아 크레센시아(Saint Maria Crescentia) (0) | 2024.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