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파르참의 성 콘라도(Saint Conrad of Parzham) |
축일(Feast) | 4월 21일(21 April)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인(Saint) |
시복(Beatified) | 1930년 6월 15일(15 June 1930) |
시성(Canonized) | 1934년 5월 20일(20 May 1934) |
수호(Patronage) | |
신분(Identity) | 수도사(Monk) |
활동지역(activity area) | 파르참(Parzham) |
활동연도(activity year) | 1818-1894년 |
파르참의 성 콘라도(Saint Conrad of Parzham)는 독일의 한 마을에서 배우지 못한 시골 사람이지만 매우 신심이 깊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Saint Conrad of Parzham was born in a village in Germany to uneducated but very religious parents.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죽어서 그는 농사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는 이와 같은 힘든 시련 속에서도 비바람을 무릅쓰고 미사에 참석하였다.
When he was young, his father died at a young age, so he had to focus on farming. Even during these difficult ordeals, he attended mass despite the wind and rain.
이후 수도생활에 대한 매력을 느낀 그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 Capuchin)에 입회하였다. 그로부터 49년 후 그가 죽는 날까지 그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문지기 봉사에 최선을 다했다.
Afterwards, he felt attracted to monastic life and joined the Order of Friars Minor Capuchin. From then on, until the day he died 49 years later, he did his best to serve as a gatekeeper every day, every day.
타고난 내성적인 성격 탓에 기도하는 것과 고독한 생활을 좋아했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본연의 의무를 충실히 했다.
Due to his innate introverted nature, he liked prayer and a solitary life, but he did not mind this and faithfully performed his duties.
그는 스스로도 매일 시원한 맥주 한 잔 정도를 즐겼다고 전해지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He is said to have enjoyed a glass of cold beer every day, and he never forgot to distribute food to the poor.
때로는 찾아오는 거지들이 그가 내어주는 음식에 불만을 터트리자 자비로운 그는 그들의 모든 요구를 기꺼이 응하였다. 그러나 누군가 건네받은 뜨거운 국물을 그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Sometimes, when the beggars who visited him were dissatisfied with the food he served, he was merciful and willingly complied with their every request. However, someone threw the hot soup handed to him in his face.
너그럽고 인내심 많은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 일 없는 듯이 얼굴을 닦고 계속 일을 했다.
Generous and patient, he smiled, wiped his face and continued working as if nothing had happened.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음으로써 침묵의 분위를 계속 유지하려 노력했다. 말해야 할 때에는 가능한 한 하느님이나 거룩한 일들에 대하여서만 이야기하곤 했다.
He tried to maintain an atmosphere of silence by not saying much. When he had to talk, he would only talk about God or holy things whenever possible.
1894년 4월 21일 마지막 순간까지 의무를 다한 그는 “이제 영원을 위하여 준비해야지.” 하면서 병자성사를 받고 숨을 거두었다.
Having fulfilled his duty until the last moment on April 21, 1894, he said, “Now I must prepare for eternity.” He received the Anointing of the Sick and passed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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