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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catholic baptismal name)] 혼혈인과 반인종차별의 수호성인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Saint Martin de Porres)

by 1살 비오 202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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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Saint Martin de Porres)
축일(Feast) 11월 3일(November 3)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1837년 10월 29일(29 October 1837)
시성(Canonized) 1962년 5월 6일(6 May 1962)
수호(Patronage) 혼혈인(mixed-race people), 반인종차별(anti-racism)
신분(Identity) 수도사(monk)
활동지역(activity area)  
활동연도(activity year) 1579-1639년

 

성 마르티누스 데 포레스(Saint Martin de Porres)는 1579년 12월 9일 페루의 수도 리마(Lima)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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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Martin de Porres was born as an illegitimate child in Lima, the capital of Peru, on December 9, 1579.

 

그의 아버지는 그를 친자로 입적하지는 않았지만 양육과 교육에 있어서는 소홀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놀라운 신앙심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보였던 그는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당시 외과 의사를 겸하는 이발사 교육을 받았고 도미니코회(Dominican Order) 수사가 되어 전 생애를 수도원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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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hough his father did not register him as his biological son, he was not negligent in his upbringing and education. He showed remarkable faith and love for the poor from a young age. At the age of twelve, he received training to be a barber, who was also a surgeon at the time, and became a monk of the Dominican Order, spending his entire life in a monastery.

 

그는 리마의 가난한 환자들을 무상으로 치료해 주고, 자신이 받은 물품을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줌으로써 선종 전에도 이미 살아 있는 성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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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respected as a living saint even before his death by treating poor patients in Lima free of charge and generously distributing the goods he received to the poor.

 

그는 선교사가 되어 해외 선교지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기를 자주 열망하였으나 그러하지 못했고 대신 그에게는 많은 초자연적 은혜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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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often longed to become a missionary and go to overseas mission fields to spread the gospel and become a martyr, but he was unable to do so, and instead, many supernatural graces were bestowed upon him.

 

그는 미물인 벌레조차 사랑했고 쥐조차 그와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한번은 그의 수도원장이 빚에 몰려 곤경에 처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그저 가련한 종이고, 수도원의 재산이니 저를 팔아 빚을 갚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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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loved even the smallest bugs, and even mice could be friends with him. Once, when his abbot was in trouble due to debt, he said: “I am just a poor servant, the property of the monastery, so sell me and pay your debt.”

 

 

 

그가 복음 정신 안에서 애덕을 실천하고 이웃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단식 같은 금욕 생활을 꾸준히 실천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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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ason why he was able to practice charity and devotedly serve his neighbors in the spirit of the gospel can be found in the fact that he did not neglect to pray for several hours a day to purify himself and consistently practiced an ascetic life such as fasting. 

 

또한 늘 겸손한 자세로 남들이 꺼리는 청소 등을 도맡아 실천해 ‘빗자루 수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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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ddition, he always had a humble attitude and took on tasks that others were reluctant to do, such as cleaning, earning him the nickname ‘Broom Monk.’

 

그는 일생을 평범한 수사로 살다가 선종했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많은 고위 성직자와 귀족들이 참석해서 그를 운구했을 만큼 이미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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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hough he died after living his entire life as an ordinary monk, he was already so respected by the people that many high-ranking clergy and nobles attended his funeral and carried him away.

 

교황 성 요한 23세는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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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 St. John XXIII said of him:

 

“그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훨씬 더 엄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장 쓰라린 모욕까지도 용서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으로 죄인들을 속량하려고 애썼다. 그는 사랑으로 병자들을 위로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과 의약품을 마련해 주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농장의 노동자들과 흑인들 그리고 그 당시 노예와 비슷하게 간주되던 혼혈아들을 도와주었다. 그래서 그는‘애덕의 마르티노’라고 불릴 자격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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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asked for forgiveness for the sins of others. And, feeling that he deserved a much harsher punishment for his own sins, he forgave even the bitterest insults. He tried with all his might to redeem sinners. He comforted the sick with love. He provided food, clothing, and medicine to the poor. He did all he could to help farm workers, blacks, and mulattoes who were considered similar to slaves at the time. So he fully deserves to be called ‘Martino of Charity.’” 

 

그는 사생아라는 모욕과 피부 색깔로 인한 갖가지 경멸을 받았지만, 기도와 봉사를 통해 이를 극복했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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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suffered the insult of being an illegitimate child and all kinds of contempt due to his skin color, but because he overcame these through prayer and service, he is revered as the patron saint of people working to improve racial discrimination.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자 독서기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다." 성 마르티노는 자기 생활의 모범으로 우리가 이 사랑의 길을 통하여 구원과 거룩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당신 몸에 우리 죄를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알고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께 대한 심원한 사랑으로 이끌리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당하신 잔혹한 고초를 바라볼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한 각별한 사랑으로 지극히 높으신 성체를 공경하여 성당 감실 앞에서 조배하는 데 장시간을 보냈고, 열렬한 마음으로 이 영혼의 양식을 영하고자 했습니다.

성 마르티노는 또 거룩하신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부패되지 않은 신앙과 겸손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극진한 애정으로 자기 형제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와 자기의 형제로서 대하고 겸손에 넘치는 마음으로 다른 모든 이들을 자기보다 의롭고 어진 사람들로 여기어 그들을 자기보다 더 많이 사랑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잘못을 변호해 주고, 자기가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보다 더 큰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고 확신한 나머지 참기 지극히 어려운 모욕까지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죄인들을 회개에로 이끌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병자들을 성심껏 간호해 주었으며, 극빈자들에게 양식과 의류와 약품을 조달해 주었습니다. 거의 노예처럼 취급받던 농부들과 흑인들 그리고 혼혈인들을 자기 능력이 미치는 한도까지 돌보아 주고 그들에게 온갖 도움과 친절을 베풀어 주었으므로 마침내 백성들로부터 "자비의 사람 마르띠노"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말과 표양과 덕행으로 사람들을 신앙에로 그렇게도 힘있게 이끈 이 거룩한 사람은 아직도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마음을 천국에로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높고도 거룩한 것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영광으로 여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악의 유혹에 끌려가 이러한 덕행들을 멸시하거나 싫어하고 소홀히 하기까지 합니다. 성 마르티노의 모범이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의 거룩한 계명을 지킴이 얼마나 즐겁고 복된 것인지 많은 이들에게 가르쳐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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