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알칼라의 성 디에고(Saint Didacus of Alcalá) |
축일(Feast) | 11월 12일(12 November)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인(Saint) |
시복(Beatified) | |
시성(Canonized) | 1588년 7월 10일(10 July 1588) |
수호(Patronage) | 평수사(Lay Monk or Lay Brothers) |
신분(Identity) | 수사(Monk), 고해신부(confessor) |
활동지역(activity area) | 알칼라(Alcala) |
활동연도(activity year) | 1400-1463년 |
알칼라의 성 디에고(Saint Didacus of Alcalá)는 1400년경 에스파냐의 작은 마을에서 가난하지만 신심 깊은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Saint Didacus of Alcalá was born around 1400 in a small town in Spain as the son of poor but devout parents.
그는 젊은 시절 은수자로서 고적한 삶을 살다가 작은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에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When he was young, he lived a solitary life as a hermit and then entered the Order of Friars Minor as a lay monk.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뛰어난 사랑으로 큰일을 이룩하여 성덕이 탁월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He was widely known for his outstanding sanctity, having achieved great things through his outstanding love for the poor.
1445년 그는 푸에르테벤투라(Fuerteventura) 섬의 작은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 공동체의 수호자로 선출되었다. 많이 배우지 못한 평수사에게 그런 직책을 맡기는 것이 평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열정과 성실함 그리고 성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In 1445 he was elected tutelar of the Order of Friars Minor community on the island of Fuerteventura. Although it was not normal to entrust such a position to a lay monk who had not learned much, he faithfully performed the duties given to him with passion, sincerity, and holiness.
시에나(Siena)의 성 베르나르디누스(Saint Bernardino, 5월 20일)의 시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갔으나 수많은 순례자가 각지에서 로마로 몰려오면서 예기치 않은 전염병이 발발했다.
He went to Rome to attend the canonization ceremony of Saint Bernardino of Siena (May 20), but as numerous pilgrims flocked to Rome from all over, an unexpected epidemic broke out.
아라 코엘리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Basilica of Santa Maria in Aracoeli)에 딸린 수도원에서 머물던 알칼라의 성 디에고(Saint Didacus of Alcalá)는 3개월 동안 헌신적으로 병자들을 돌보았고, 그의 돌봄과 기도를 통해 많은 이들이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했다고 한다.
Saint Didacus of Alcalá, who stayed in the monastery attached to the Basilica of Santa Maria in Aracoeli, devotedly cared for the sick for three months, and It is said that many people experienced miraculous healing through his care and prayers.
그 후 에스파냐로 돌아온 그는 여러 수도원을 거쳐 1456년 마드리드(Madrid)의 산타 마리아 데 헤수스(Santa Maria de Jesus)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다.
After returning to Spain, he passed through several monasteries and was dispatched to the Monastery of Santa Maria de Jesus in Madrid in 1456.
그는 그곳에서 고적함 속에 참회와 관상 생활을 실천하며 여생을 보냈다. 늘 겸손하게 수도원 안에서 정원사와 짐꾼의 소임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 실천했던 그는 1463년 11월 12일 병환으로 선종하였다.
He spent the rest of his life there, practicing penance and contemplative life in solitude. He always humbly pursued the duties of a gardener and porter within the monastery without hesitation, and passed away due to illness on November 12, 1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