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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catholic baptismal name)] 예수님의 오상 성흔을 받은 복녀 나르니의 루치아(Blessed Lucy of Narni)

by 1살 비오 202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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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복녀 나르니의 루치아(Blessed Lucy of Narni)
축일(Feast) 11월 15일(16 November)
성인 구분(Saint Type) 복녀(Blessed)
시복(Beatified) 1710년 3월 1일(1 March 1710)
시성(Canonized)  
수호(Patronage) 나르니(Narni)
신분(Identity) 동정녀(virgin)
활동지역(activity area) 나르니(Narni)
활동연도(activity year) 1476-1544년

 

신비주의자이자 성흔주의자로 유명한 복녀 나르니의 루치아(Blessed Lucy of Narni)빛의 성녀 루치아의 축일인 1476년 12월 13일에 부모님의 11명의 자녀 중에 장녀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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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ssed Lucy of Narni, famous as a mystic and stigmatist, was born on December 13, 1476, the feast day of Saint Lucy of Light, as the eldest of her parents' 11 children.

 

어릴 때부터 환시를 받은 복녀 나르니의 루치아(Blessed Lucy of Narni)는 열두 살이 되었을 때 개인적으로 순결 서약을 하고 도미니코 재속 3회(Third Order of Saint Dominic)의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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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ssed Lucy of Narni, who received visions from a young age, took a personal vow of chastity when she was twelve and decided to become a nun of the Third Order of Saint Dominic.

 

그러나 이듬해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녀는 삼촌의 보살핌을 받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어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 삼촌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의 뜻에 따라,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루치아를 가능한 한 빨리 결혼시키는 것이라고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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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umstances, however, changed to make doing so impossible as her father died the following year, leaving her in the care of an uncle. This uncle, following the wish of her father while he was still alive, decided that the best course of action he could take would be to get Lucy married as quickly as possible.

 

그녀의 나이 14세 때에 거의 강제적으로 약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약혼반지를 버리고 완강히 거부하다가, 다음 해에 그 젊은이와 결혼하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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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age of 14, she was almost forced into an engagement. She threw away the engagement ring and stubbornly refused, but promised to marry the young man the following year.

 

이 약속은 그녀가 고해신부의 충고도 있었지만 성모 마리아를 환시를 통하여 보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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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romise was made because she had seen the Virgin Mary through a vision, despite the advice of her confessor.

 

 

 

남편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명목상의 부부였지 실제상의 부부는 아니었다. 이렇게 3년을 살다가 남편이 아내에게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허용하자, 그녀는 도미니코 재속 3회(Third Order of Saint Dominic)의 수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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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rding to the husband's testimony, the couple was a couple in name and not in reality. After living like this for three years, her husband allowed her to live a free life, and she became a nun of the Third Order of Saint Dominic. 

 

여기서 그녀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다가 오상 성흔을 받았다. 매 수요일과 금요일마다 피가 흘렀는데, 3년 동안이나 계속되니 이를 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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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she meditated on the sufferings of Christ and received the stigmata. I was bleeding every Wednesday and Friday, and it continued for three years, so I couldn't hide it.

 

교황청과 의사들도 이 사실을 확인하였고, 그전의 남편도 이 현상을 보고 작은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에 입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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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atican and doctors also confirmed this fact, and her former husband also saw this phenomenon and joined the Order of Friars Minor.

 

페라라(Ferrara)의 공작은 그녀를 위해 수도원을 지어주었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23세였다. 그러나 1505년부터 그녀는 대중들 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39년을 수녀원 안에서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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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o, the Duke of Ferrara built a monastery for her, when she was only 23 years old. However, from 1505 she disappeared from the public and lived only in a convent for 39 years.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기 위하여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1544년에 그녀가 운명했을 때 사람들은 그때까지 그녀가 살아있었음을 알고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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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so many people flocked to see her. It is said that when she died in 1544, people gathered like a cloud after learning that she had been alive until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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