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성 대 알베르토(Saint Albertus Magnus) |
축일(Feast) | 11월 15일(15 November)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인(Saint) |
시복(Beatified) | 1622년 |
시성(Canonized) | 1931년 12월 16일(16 December 1931) |
수호(Patronage) | 자연과학(natural sciences), 철학자(philosophers), 과학자(scientists) |
신분(Identity) | 주교(bishop), 교회학자(Doctor of the Church) |
활동지역(activity area) | |
활동연도(activity year) | 1200-1280년 |
성 대 알베르토(Saint Albertus Magnus)는 독일 지방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223년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던 그는 당시 도미니코회(Dominican Order) 총장이었던 복자 작센의 요르단(Blessed Jordan of Saxony)을 통해 성소(vocation)를 깨닫고 가족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도미니코회(Dominican Order)에 입회했다.
Saint Albertus Magnus was born as the son of a German local official. In 1223, while studying law at the University of Padova in Italy, he realized his vocation through Blessed Jordan of Saxony, then president of the Dominican Order, and went to Germany despite all opposition from his family and Entered the Dominican Order.
1243년 혹은 1244년에 파리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획득한 그는 1245년부터 파리 대학의 교수로 강의하였다. 이 시기 그의 제자로는 훗날 위대한 신학자가 된 성 토마스 데 아퀴노(Saint Thomas Aquinas)가 있었다.
He obtained professorship at the University of Paris in 1243 or 1244, and taught as a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Paris from 1245. His disciples during this period included Saint Thomas Aquinas, who later became a great theologian.
그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Saint Thomas Aquinas)의 천재성을 일찍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토마스(Thomas)는 지적으로 나의 좋은 동료이자 친구이다.”
He is said to have recognized the genius of Saint Thomas Aquinas early on and said: “Thomas is a good intellectual colleague and friend of mine.”
여러 수도회 대학과 파리 대학에서 성경과 신학을 강의하던 그는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으로 강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는 로마에 머무는 동안 교황의 신학 고문으로서 봉사했다.
He lectured on the Bible and theology at several monastery universities and the University of Paris, and expanded his teaching area to include not only theology but also philosophy. He served as the Pope's theological advisor during his stay in Rome.
성 대 알베르토(Saint Albertus Magnus)는 학업과 제자들을 가르치며 저술 활동에 전념하였다. 1274년의 리옹(Lyon) 공의회에서 크게 활약했으며 특히 로마와 그리스 교회의 일치에 공헌하였다.
Saint Albertus Magnus devoted himself to his studies, teaching his students, and writing. He played a major role in the Council of Lyon in 1274 and especially contributed to the unity between the Roman and Greek churches.
1280년 11월 15일 쾰른의 도미니코회(Dominican Order) 수도원에서 선종한 성 대 알베르토(Saint Albertus Magnus)는 현재 쾰른의 성 안드레아 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Saint Albertus Magnus, who died in a monastery of the Dominican Order in Cologne on November 15, 1280, is currently buried in the catacombs of Saint Andrew's Church in Cologne.
살아생전 소위 만물 박사로 통한 성 대 알베르토(Saint Albertus Magnus)는 성경과 신학은 물론 설교학,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까지 두루 섭렵한 논문들이 많이 있고, 관심 분야 또한 천문학, 화학, 생물학, 동물학, 지리학, 지질학 그리고 식물학까지 확대되었다.
Saint Albertus Magnus, the so-called doctor of all things, wrote many papers covering not only the Bible and theology, but also homiletics, logic, metaphysics, ethics, and physics, and Areas of interest also expanded to include astronomy, chemistry, biology, zoology, geography, geology, and botany.
그러나 그는 특히 인간 이성의 자율성과 감각-경험으로 얻는 지식의 유효성 및 조직 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가치 확립 등에서 더욱 돋보였다.
However, he especially stood out in terms of the autonomy of human reason, the validity of knowledge gained through sense-experience,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values of Aristotle's philosophy in systematic theology.
이렇듯 당시 모든 학문을 섭렵한 그는 ‘보편적 박사’(Doctor universalis)라고 불렸으며, 그의 학문 영역이 방대하다 하여 이름 앞에 ‘위대한’ 또는 ‘큰’(大)이라는 뜻의 ‘마뉴스’(Magnus)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As such, he was called 'Doctor universalis' because he was knowledgeable about all the academic disciplines of the time, and because his academic field was so vast, he was given the name 'Magnus' (meaning 'great' or 'lar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