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포르토 마우리치오의 성 레오나르도(Saint Leonard of Port Maurice) |
축일(Feast) | 11월 26일(26 November)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인(Saint) |
시복(Beatified) | 1796년 6월 19일(19 June 1796) |
시성(Canonized) | 1867년 6월 29일(29 June 1867) |
수호(Patronage) | Missionaries(선교사), Preachers(설교자) |
신분(Identity) | 신부(priest), 저술가(writer) |
활동지역(activity area) | 포르토 마우리치오(Porto Maurizio) |
활동연도(activity year) | 1676-1751년 |
성 레오나르도(Saint Leonard of Port Maurice)는 이탈리아의 포르토 마우리치오(Porto Maurizio)에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Saint Leonard of Port Maurice was born in Porto Maurizio, Italy, the son of a sea captain.
그는 13세 때 로마에 있는 예수회(Society of Jesus) 대학에 들어갔다. 함께 생활하던 삼촌은 성실한 학생이었던 그가 의사가 되기를 강력히 희망하였다.
At the age of 13, he entered the Jesuit College of Jesus in Rome. The uncle with whom he lived strongly hoped that he, a diligent student, would become a doctor.
그러나 그는 삼촌의 기대와는 달리 1697년 작은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에 입회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삼촌과는 의절하고 말았다. 수도명으로 레오나르도(Leonard)를 선택한 그는 로마의 성 보나벤투라 대학(St. Bonaventure University)에서 공부하고 1703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However, contrary to his uncle's expectations, he joined the Order of Friars Minor in 1697, and as a result, he disowned his uncle. He chose Leonard as his religious name, studied at St. Bonaventure University in Rome, and was ordained a priest in 1703.
그는 1709년에 피렌체(Firenze)의 산 프란체스코 델 몬테 수도원으로 갔고, 그때부터 토스카나(Toscana) 전역을 다니며 설교를 하여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He went to the Monastery of San Francesco del Monte in Florence in 1709, and from then on he preached throughout Tuscany, achieving remarkable success.
그는 산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가 인콘트로(Incontro) 근교에 수도자를 위한 은둔소를 지었으며, 로마 지역의 선교단을 지휘하면서 6년을 생활하였다.
He became the abbot of the Monastery of San Francesco and built a hermitage for monks near Incontro, where he lived for six years while leading a missionary team in the Rome area.
1736년 그는 산 보나벤투라(San Bonaventura)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지만, 다음 해에 그 직책을 사임하고 다시 선교 길에 올라 열정적인 설교로 거대한 청중을 불러 모으는 데 성공하였다.
In 1736, he became the abbot of the Monastery of San Bonaventura, but resigned the position the following year and went on a missionary journey again, succeeding in attracting a huge audience with his passionate sermons.
그는 십자가의 길에 대한 열렬한 신심가이자 전파자였다. 또한 성체와 성심 그리고 마리아 신심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He was a passionate believer and propagator of the Way of the Cross. Also, his devotion to the Eucharist, the Sacred Heart, and Mary was such that no one could follow him.
그는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의 명을 받고 코르시카(Corsica)로 가서 설교하고 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He went to Corsica under the order of Pope Benedict XIV to preach and campaign for peace.
1751년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로마의 산 보나벤투라 수도원으로 돌아왔고 43년 동안 열렬한 선교사로 활동했던 그는 도착하던 날 밤에 세상을 떠났다.
In 1751, he returned exhausted to the Monastery of San Bonaventure in Rome. After working as an ardent missionary for 43 years, he died the night he arri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