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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catholic baptismal name)] 사하라의 사도 성 샤를 드 푸코(Saint Charles de Foucauld)

by 1살 비오 2023.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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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샤를 드 푸코(Saint Charles de Foucauld)
축일(Feast) 12월 1일( 1 December)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2005년 11월 13일(13 November 2005)
시성(Canonized) 2022년 5월 15일(15 May 2022)
수호(Patronage)  
신분(Identity) 신부(priest), 은수자(hermit)
활동지역(activity area)  
활동연도(activity year) 1858-1916년

 

성 샤를 드 푸코(Saint Charles de Foucauld)는 1858년 9월 15일 프랑스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불행히도 여섯 살이 되던 1864년 부모를 차례로 잃고 고아가 되어 외조부에게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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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Charles de Foucauld was born on September 15, 1858 into a pious family in France. Unfortunately, in 1864, when he was six years old, he lost his parents one after the other, became an orphan, and was left in the care of his maternal grandfather. 

 

그는 학업에 성실치 않아 성적이 부진했고 또 엄격한 규율 생활을 싫어했다. 그리고 그는 퇴학과 함께 신앙마저 잃고 세속적인 쾌락과 물질적인 삶을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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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not diligent in his studies, so his grades were poor, and he disliked the strict discipline. And when he was expelled from school, he even lost his faith and pursued worldly pleasures and a material life. 

 

그는 사하라 사막을 탐험하다가 무슬림의 순박하고 투철한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기도와 금욕의 삶을 시작했고 은수자로서의 자신의 소명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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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exploring the Sahara Desert, he was deeply impressed by the simple and thorough faith of Muslims. From this time on, he began a life of prayer and asceticism in earnest and realized his calling as a hermit. 

 

수도서원후 그는 청빈과 자기희생, 절제와 고독을 추구했고 밤낮으로 묵상과 기도에 전념하였다. 그는 사막의 무슬림 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으며 그 방법은 설교가 아니라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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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aking monastic vows, he pursued poverty, self-sacrifice, self-control, and solitude, and devoted himself to meditation and prayer day and night. He wanted to spread the gospel to the Muslim tribes of the desert, and he did so by example, not by preaching. 

 

그는 또한 자신의 모든 능력과 정성을 다해 사람들을 섬기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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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also served the people with all his ability and sincerity and worked tirelessly to achieve peace.

 

성 샤를 드 푸코 은수처

 

 

1914년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유럽으로 돌아가 군종신부나 위생병으로 참여할 것을 생각했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의무임을 깨달아 아프리카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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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World War I broke out in Europe in 1914, he considered returning to Europe and participating as a chaplain or medic, but he realized that protecting his position was a more important duty, so he remained in Africa.

 

그러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반대하는 원주민들의 봉기가 일어났을 때, 그 혼란의 와중에 약탈을 위해 쳐들어온 이들에게 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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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ever, in 1916, during the height of World War I, when the indigenous uprising against French colonial rule broke out, he was kidnapped by those who came to plunder during the chaos.

 

성 샤를 드 푸코 은수처 내부

 

 

그리고 그들을 막으러 프랑스 군인들이 나타나자 성 샤를 드 푸코(Saint Charles de Foucauld)를 지키던 한 젊은이가 당황한 상태에서 그의 머리에 총을 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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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when French soldiers appeared to stop them, a young man guarding Saint Charles de Foucauld panicked and shot him in the head.

 

성 샤를 드 푸코(Saint Charles de Foucauld)가 사막에서 죽은 후 그의 영적인 영향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는 사막에서의 고적한 삶을 통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단순하게 하느님을 깨닫는 행복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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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Saint Charles de Foucauld died in the desert, his spiritual influence spread throughout the world. Through his solitary life in the desert, he gave up everything and simply enjoyed the happiness of realizing God. 

 

어떤 의미에서 그는 비그리스도교 대중 안으로 파고들어 간 선구자였다. 그는 아프리카의 비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안에서 자신의 복음적 삶을 실천으로 보여주며 새로운 선교 방법을 모색했다. 그래서 그를 ‘사하라의 사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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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 sense, he was a pioneer in penetrating into the non-Christian masses. He sought new missionary methods by demonstrating his evangelical life among non-Christians and Muslims in Africa. That is why he is called the ‘Apostle of the Sa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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