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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catholic baptismal name)]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성 암브로시오(Saint Ambrose of Milan)

by 1살 비오 202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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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암브로시오(Saint Ambrose of Milan)
축일(Feast) 12월 7일(7 December)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시성(Canonized)  
수호(Patronage) 양봉가(beekeepers), 양초 제조업자(candlemakers), 석공(stone masons)
신분(Identity) 주교(bishop), 교부(Church Fathers), 교회학자(doctors of the church)
활동지역(activity area) 밀라노(Milano)
활동연도(activity year) 339-397년

 

 

성 암브로시오(Saint Ambrose of Milan)는 339년 독일 트리어(Trier)에서 태어났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그는 국가 관리의 길을 택해 뛰어난 실력과 좋은 가문을 배경으로 빨리 출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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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Ambrose of Milan was born in Trier, Germany in 339. Following his family's tradition, he chose the path of national administration and quickly rose to prominence thanks to his excellent skills and good family background.

 

그가 밀라노를 다스리던 때 서방 교회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대표자인 아욱센티우스(Auxentius)가 주교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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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he ruled Milan, Auxentius, a representative of Arianism in the Western church, was the bishop.

 

아리우스주의(Arianism)성자 예수께서는 '성부'에 의해 시간 이전에 창조된 존재이며 성부와 함께 영속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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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anism refers to the view that the Son Jesus is a being created before time by the ‘Father’ and does not exist permanently with the Father.

 

그러나 그가 죽자 후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정통 교리를 따르는 신자들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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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ever, when he died, in the process of selecting a successor, a fierce conflict broke out between Arianists and believers who followed orthodox doctrine.

 

성 암브로시오(Saint Ambrose of Milan)는 밀라노의 질서 회복을 위해 이 문제에 개입하였다. 그는 이들을 중재하면서 평화적 방법과 대화를 통해 화해를 추구하자고 연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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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Ambrose of Milan intervened in the matter to restore order in Milan. He mediated between them and gave a speech calling for reconciliation to be pursued through peaceful means and dialogue.

 

이때 뜻밖에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로 그가 주교로 선출되었고 그는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그는 세례도 받지 않은 예비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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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is time, unexpectedly, he was elected bishop with the overwhelming support of the citizens, and he had no choice but to accept. At that time, he was a catechumen who had not even been baptized.

 

주교가 된 후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희사하고, 수도자와 같이 청빈과 극기의 생활을 하면서 신학과 성경 등을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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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becoming a bishop, he confessed his shortcomings, donated all his possessions to the poor, and studied theology and the Bible while living a life of poverty and self-denial like a monk.

 

새 황제의 고문관이 된 그는 황제를 설득하여 니케아 신앙 고백을 따르도록 하고 서방에서 아리우스파를 축출하는 법안을 만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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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n advisor to the new emperor, he persuaded the emperor to follow the Nicene Confession and to enact legislation to expel Arianism from the West.

 

390년 테살로니카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로마 총독을 살해했고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군인들에게 진압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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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390, the Thessalonians rioted and murdered the Roman governor, and Emperor Theodosius I ordered soldiers to suppress it.

 

이에 그는 황제에게 범죄의 중대함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그는 참회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공식 참회 행위로 보속(satisfaction)해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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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rdingly, he wrote a letter to the emperor informing him of the seriousness of the crime. He argued that forgiveness can be achieved only when one realizes the need for repentance and makes satisfaction through a formal act of penitence. 

 

황제는 이에 순순히 응해 황제복 대신 참회복으로 갈아입고 통회하였다. 그는 항상 다음과 같은 원칙 밑에서 행동하였다. “황제는 교회 안에 있다. 그는 교회 위에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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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mperor obediently responded, changed into penitential attire instead of the imperial robe, and expressed contrition. He always acted under the following principles: “The emperor is in the church. He cannot be above the church.” 

 

그는 또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를 설득하여 마침내 제국 내에서 우상 숭배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395년 1월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심한 질병으로 밀라노에서 사망하자 성 암브로시오(Saint Ambrose of Milan)가 그의 장례 때 기도하고 설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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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also persuaded Emperor Theodosius to finally eradicate idolatry within the empire. When Emperor Theodosius died in Milan from a serious illness in January 395, Saint Ambrose of Milan prayed and preached at his funeral.  

 

 

그 후 2년 뒤인 397년 4월 4일 성 암브로시오(Saint Ambrose of Milan)도 밀라노에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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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years later, on April 4, 397, Saint Ambrose of Milan also died in Milan.

 

그는 초기 교회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로마 제국이 쇠퇴해 가던 서방 세계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부흥을 새롭게 이끌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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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one of the greatest figures of the early church, and he led the revival of the Christian church in the Western world where the Roman Empire was in decline.

 

또한 세속의 권위에 대항하여 교회의 독립과 자주성을 옹호했던 탁월한 행정가이면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설파한 위대한 신학자였다. 그래서 그는 서방 교회의 4대 교부의 한 명으로 추앙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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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also an outstanding administrator who defended the independence and autonomy of the church against secular authority, and a great theologian who preached knowledge in various fields. That is why he is revered as one of the four great church fathers of the Wester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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