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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catholic baptismal name)] 거룩한 부부 성 엘제아리오(Saint Elzéar of Sabran)와 복녀 델피나(Blessed Delphine of Glandèves)

by 1살 비오 2023.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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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엘제아리오와 복녀 델피나
축일(Feast) 9월 27일(27 September)  12월 9일(December 9)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복녀(Blessed)
시복(Beatified)  
시성(Canonized)  
수호(Patronage)  
신분(Identity) 3회원(Third Order of St. Francis)
활동지역(activity area)  
활동연도(activity year) 1285-1323   1285?-1360년

 

 

성 엘제아리오(Saint Elzéar of Sabran)복녀 델피나(Blessed Delphine of Glandèves)는 프랑스에서 귀족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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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Elzéar of Sabran and Blessed Delphine of Glandèves were born into noble families in France.

 

성 엘제아리오(Saint Elzéar of Sabran)는 신심이 깊었던 어머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수도원의 원장으로부터 교육받고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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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Elzéar of Sabran was greatly influenced by his devout mother and was educated and raised by the abbot of the monastery.

 

어렸을 때 고아가 된 복녀 델피나(Blessed Delphine of Glandèves)는 삼촌들의 보호를 받으며 수녀원장이었던 이모의 지도 아래 성장하였다. 어린 소녀였을 때 그녀는 순결 서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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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phaned at a young age, Blessed Delphine of Glandèves grew up under the care of her uncles and under the guidance of her aunt, who was the abbess. As a young girl she took a vow of chastity.

 

그녀의 순결 서약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2살의 나이에 사브랑의 성 엘제아리오(Saint Elzéar of Sabran)와 결혼했다. 그들은 3년 후에 퓌미셸(Puimichel) 성에서 결혼했다. 함께 성장한 두 사람은 서로를 남편과 아내가 아닌 형제와 자매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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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pite her vow of chastity, she married Saint Elzéar of Sabran at the age of twelve. They were married three years later at the Puimichel Castle. The two people who grew up together saw each other as brother and sister, not husband and wife. 

 

그녀의 모범에 영감을 받아 그녀의 남편도 독신 생활을 서약했고, 두 사람 모두 결혼 생활 내내 이를 존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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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ed by her example, her husband also took a vow of celibacy, which they both honored throughout their marriage.

 

 

두 사람 모두 성 프란치스코 제3수도회(Third Order of St. Francis) 수도복(habit)을 받은 두 사람은 기도와 참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 활동을 실천하면서 함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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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wo men, both of whom received the habit of the Third Order of St. Francis, lived together practicing prayer, penance, and charity for the poor.

 

이러한 생활 속에서 이 거룩한 부부는 관상과 기도를 중심으로 사회활동을 하였으며, 선행과 애덕 실천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이며 삶으로써 주위의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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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life, this holy couple engaged in social activities centered on contemplation and prayer, and became an example to those around them by setting an extraordinary example in practicing good deeds and charity.

 

성 엘제아리오(Saint Elzéar of Sabran)는 매일같이 성무일도를 바쳤다. 그의 나이 23세 때에 부친의 명예와 유산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이에 따르는 온갖 위험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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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Elzéar of Sabran prayed the Liturgy of the Hours every day. When, at the age of 23, he received his father's honor and inheritance, he became aware of all the dangers that came with it. 

 

그러나 그는 열렬한 신심과 지혜로써 세속적인 재물을 다스렸다. 또한 그는 국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의 일을 돌보기도 하였는데, 왕의 부탁으로 파리(Paris)에 대사로 갔다가 중병을 얻어 1323년 9월 27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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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ever, he managed his worldly wealth with fervent piety and wisdom. He was also called by the king to take care of the affairs of the palace. At the king's request, he went to Paris as an ambassador, but became seriously ill and died on September 27, 1323. 

 

사망하기 전에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매일 묵상함으로써 온갖 고통을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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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his death, he overcame all kinds of pain by meditating on the story of Christ's passion every day.

 

노자성체(Viaticum)를 영하면서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이것이 나의 희망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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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said that he shouted this while receiving Viaticum. “This was all I had hoped for.”

 

한편 그녀는 남편과 사별한 뒤 37년을 더 살았는데 죽을 때까지 수녀원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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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nwhile, after her husband's death, she lived for another 37 years, living in a convent until her death.

 

그녀는 대부분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많은 자선을 베푸는 등 은수자처럼 생활하다가 1360년에 사망하였다. 1791년 델피나의 유해는 앱트(Apt)에 있는 남편의 유해와 나란히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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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ied in 1360 after living like a hermit, giving away most of her wealth to the poor and giving much charity. In 1791, Delfina's remains were interred alongside those of her husband in A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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