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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catholic baptismal name)] 캔터베리의 성 토마스 베케트(Saint Thomas Becket)

by 1살 비오 2023.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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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토마스 베케트(Saint Thomas Becket)
축일(Feast) 12월 29일(29 December)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시성(Canonized) 1173년 2월 21일(21 February 1173)
수호(Patronage)  
신분(Identity) 주교(bishop), 순교자(martyr)
활동지역(activity area) 캔터베리(Canterbury)
활동연도(activity year) 1118-1170년

 

성 토마스 베케트(Saint Thomas Becket)는 런던에서 태어나서 법률을 공부하고 파리 대학교에서도 그의 전문 과목을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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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Thomas Becket was born in London, studied law, and also studied his specialty at the University of Paris.

 

하지만 아버지의 사망으로 궁핍한 환경에 처한 그는 1141년에 캔터베리의 대주교관으로 들어갔다. 이때 테오발드(Theobald) 대주교는 그가 법률을 공부하도록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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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ever, after facing poverty due to his father's death, he entered the archbishopric of Canterbury in 1141. At this time, Archbishop Theobald helped him study law. 

 

그는 1154년에 부제(Deacon)로 서품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테오발드(Theobald) 대주교의 명을 받고 로마(Roma)를 오가면서 중요한 일을 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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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ordained a Deacon in 1154. From then on, he traveled to and from Rome to handle important matters under the orders of Archbishop Theobald.

 

1155년 헨리 2세가 그를 잉글랜드(England)의 수상으로 임명하였다. 1161년 테오발드(Theobald) 대주교가 서거하자 헨리 2세는 그를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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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155, Henry II appointed him Prime Minister of England. When Archbishop Theobald died in 1161, Henry II appointed him Archbishop of Canterbury. 

 

물론 그는 이 직책을 완강히 거부하였지만 1162년 그는 수상직을 사임한 후 사제품을 받고서 대주교로 착좌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엄격한 생활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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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course, he stubbornly refused this position, but in 1162 he resigned as chancellor, was ordained a priest, and took office as archbishop. From this time on, he completely changed his life and began to live a strict life. 

 

1166년 그는 '클라렌든 칙령(Constitutions of Clarendon)'을 거부하였다. 이 법은 교회 법정에서 행해야 할 성직자의 권리와 교황청에 호소하는 권리를 부인하는 악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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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166 he rejected the 'Constitutions of Clarendon'. This law was an evil law that denied clergy the right to act in church courts and the right to appeal to the Holy See.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프랑스로 축출되었고 그는 이 사실을 교황에게 호소하였지만 헨리 2세와 반목하기를 원치 않았던 교황은 그를 지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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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of this incident, he was exiled to France and he appealed this to the Pope, but the Pope, who did not want to be at odds with Henry II, did not support him.

 

그는 교황의 제안에 따라 프랑스 퐁티니(Pontigny)의 시토회(Cistercians)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1166년 헨리 2세가 자신의 영향권 내에 있는 지역에서 모든 시토회(Cistercians) 회원들을 추방하겠다고 위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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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Pope's suggestion, he entered the Cistercian monastery in Pontigny, France. In 1166, Henry II threatened to expel all Cistercians from areas within his sphere of influence. 

 

이때 성 토마스 베케트(Saint Thomas Becket)성 콜룸바(Saint Columba) 수도원으로 가서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의 보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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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is time, Saint Thomas Becket went to the Monastery of Saint Columba and received the protection of King Louis VII of France.

 

루이 7세의 노력에 의해 성 토마스 베케트(Saint Thomas Becket)는 잉글랜드로 다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무참히 살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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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to the efforts of Louis VII, Saint Thomas Becket was able to return to England. However, he was brutally murdered in Canterbury Cathedral. 

 

그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주여 내 영혼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예수의 이름과 교회를 위하여 나는 기꺼이 죽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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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left the following last words: “Lord, I commit my soul to you. “I am willing to die in the name of Jesus and for the church.”

 

성 토마스 베케트 주교 순교자 독서기도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만이 월계관을 얻는다

우리는 주교, 대사제라 불리웁니다. 우리가 만일 불리우는 바 그대로의 사람이 되고자 하면 또 우리 칭호의 의미를 알고자 한다면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아버지께 바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영원한 대사제로 세워 주신 분의 발자취를 열심히 묵상하고 그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분은 각자에게 행위에 따라 갚아 주시고자 모든 행위와 그에 수반되는 모든 지향을 하늘 높은 데서부터 살피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분의 대리자입니다. 그분 이름의 영광과 그분 품위의 영예를 받다 일시적으로 영적 노고에 대한 열매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그들의 동반자들을 교회의 가장 높은 지위에서 계승합니다. 또한 봉사직을 통해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부숴버려 신앙과 덕행의 진보로 구성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합니다.

주교들의 수효는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는 품을 받을 때 가르치고 다스리는 사명을 열심히 또 온갖 정성을 다해 수행하겠노라고 약속했고, 지금도 매일 그 약속을 반복합니다. 우리가 약속한 신앙이 행동의 증거로써 더욱 믿을 만한 것이 되었으면 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습니다. 그것을 거두어 주님의 곳간에 다 쌓아 두려 한다면 한 명이나 또는 몇 명의 주교들만으로는 넉넉치 못합니다.

로마 교회가 모든 교회의 머리이고 가톨릭 교리의 원천이라는 것을 누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 나라의 열쇠가 베드로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의 유대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지식 안에서 완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아갈 때 온 교회의 체제는 베드로의 신앙과 가르침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는 사람도 많이 있어야 하고 물을 주는 사람도 많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전파와 인구의 증가가 이것을 요구합니다. 한 개의 제단밖에 없었던 구약의 백성들도 거기에서 일할 많은 스승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제 이교인들이 교회에 들어온 후부터 이 필요성은 한층 더 커졌습니다. 이제 번제물을 바치려 한다면 레바논의 모든 나무로도 그것을 사를 장작을 다 충당할 수 없고 또한 레바논의 모든 짐승과 유다의 짐승까지 합쳐도 부족할 것입니다.

심거나 물 주는 사람이 누구이든간에 베드로의 신앙 위에 다 심고 물 주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자라게 하시지 않습니다. 로마 주교의 판단 및 그분이 담당한 직무를 함께 하며 그분이 맡긴 권리를 행사하는 수하의 교회 직무자들의 판단에 맡겨지는 백성들의 중요한 문제들은 분명히 베드로에게 위임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고 교회가 얼마나 큰 시련 가운데서 자라났으며 그리스도를 선장으로 모시는 베드로의 배가 얼마나 큰 풍랑을 이겨냈고 또 시련 속에서 밝히 신앙을 드러낸 이들이 어떻게 월계관을 받게 되었는지 기억하십시오. 모든 성인들은 이렇게 하여 성인이 되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만이 월계관을 얻는다."라는 말이 성인들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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