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catholic baptismal name)] 파리의 수호성인 성녀 제노베파(Saint Genevieve)

by 1살 비오 2023. 12. 10.
반응형

↑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녀 제노베파(Saint Genevieve)
축일(Feast) 1월 3일(3 January)
성인 구분(Saint Type) 성녀(Saintess)
시복(Beatified)  
시성(Canonized)  
수호(Patronage) 파리(Paris)
신분(Identity) 수녀(Nun), 동정녀(Virgin)
활동지역(activity area) 파리(Paris)
활동연도(activity year) 419-422~502-512년

 

성녀 제노베파(Saint Genevieve)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다고 하지만 부유하고 존경받는 도시 사람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더보기

Saint Genevieve was born in Paris, France. Her parents are said to have been poor farmers, but are believed to have been wealthy and respected city people.

 

그녀의 전기에 따르면 그녀는 성 게르마누스(Saint Germanus)를 만났다. 그는 설교 도중 어린 여자 아이가 경건하고 진지한 자세로 듣는 모습을 보았다.
더보기

According to her biography, she met Saint Germanus. During the sermon, he saw a young girl listening with reverence and seriousness.

 

그는 설교가 끝난 뒤 여자 아이를 불러 여러 가지를 물은 뒤 격려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근처에 수녀원이 없었기에 집에 머물면서 기도생활을 계속하였다.
더보기

It is said that after the sermon, he called the girl and asked her many questions and encouraged her. However, since there was no convent nearby, she stayed at home and continued her prayer life. 

 

그녀가 언제 수녀가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쩄든 그녀는 파리로 가서 자선과 금욕의 생활을 하였다.
더보기

It is unclear when she became a nun. Anyway, she went to Paris and lived a life of charity and abstinence.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시기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그들은 그녀를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그녀가 환시를 자주 체험하자 그녀의 환시와 예언을 기만과 사기로 취급했다.
더보기

However, there were many jealous people around her, and they accused her of being a hypocrite. Also, as she frequently experienced visions, her visions and prophecies were treated as deception and fraud. 

 

그러나 성 게르마누스(Saint Germanus)의 중재와 지원으로 그녀는 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다. 파리의 주교는 그녀에게 파리에 살며 수도생활을 원하는 처녀들을 돌보는 임무를 맡겼다.
더보기

However, with the intervention and support of Saint Germanus, she was able to overcome this ordeal. The bishop of Paris entrusted her with the task of caring for virgins living in Paris who wanted to live a religious life. 

 

451년 훈족의 왕 아틸라(Atila)가 쳐들어와 파리를 위협하자 주민들은 모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더보기

When Atila, the king of the Huns, invaded and threatened Paris in 451, all residents hastened to prepare for evacuation.

 

이때 그녀는 하느님을 믿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면서 회개와 보속(Penance)을 하면 파리는 안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더보기

At this time, she encouraged people to believe in God and have courage, and predicted that Paris would be safe if they repent and do penance.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었고 아틸라(Atila)의 군대는 오를레앙(Orleans)에서 패배하였다. 몇 년 뒤 프랑크족의 왕 메로비히(Merowig)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그녀의 자선과 희생은 더욱 빛났다.
더보기

The people believed her, and Atila's army was defeated at Orleans. Her charity and sacrifice were even more remarkable when the Frankish king Merowig occupied Paris a few years later. 

 

그녀는 굶어 죽어가는 시민들에게 음식을 날라 주고 포로 석방을 교섭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영향을 받은 메로비히(Merowig)와 후계자인 아들 힐데리히 1세는 파리 시민들을 특별히 관대하게 대했다.
더보기

She delivered food to starving citizens and negotiated the release of prisoners. Under her influence, Merowig and her son, Childerich I, his successor, treated the citizens of Paris with particular generosity. 

 

그녀가 선종하고 그녀의 유해는 성당에 안치되었는데 그녀의 프랑스어 이름대로 주느비에브(Genevieve) 성당이라고 불렸다.
더보기

After she passed away, her remains were placed in a cathedral, which was called Genevieve after her French name.

 

그녀에 대한 신심은 많은 기적을 낳았다. 834년 홍수가 일어나 파리가 완전히 침수되는 위기에 놓였을 때 그녀에게 전구(intercession)하여 이 위험에서 벗어났다.
더보기

Devotion to her gave rise to many miracles. When a flood occurred in 834 and Paris was in danger of being completely submerged, he prayed to her and escaped this danger.

 

1129년에 열병으로 만 사천 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그녀를 기리는 행렬을 하자 모든 병이 사라졌다고 한다.
더보기

It is said that when 14,000 people lost their lives due to fever in 1129, a procession was held in her honor and all the diseases disappeared.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