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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마피아 희생자의 수호성인 코를레오네의 성 베르나르도(Saint Bernard of Corleone)

by 1살 비오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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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코를레오네의 성 베르나르도(Saint Bernard of Corleone)
축일(Feast) 1월 12일(12 January)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1768년 5월 15일(15 May 1768)
시성(Canonized) 2001년 6월 10일(10 June 2001)
수호(Patronage) 마피아 희생자(Mafia victims), 임산부(expectant mothers)
신분(Identity) 수사(Monk)
활동지역(activity area) 코를레오네(Corleone)
활동연도(activity year) 1605-1667년

 

코를레오네의 성 베르나르도(Saint Bernard of Corleone)는 이탈리아의 코를레오네(Corleone)라는 섬마을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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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Bernard of Corleone was born in the island town of Corleone, Italy.

 

그가 살던 그 당시에는 부패와 폭력이 만연했다. 비록 그는 부패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자라온 환경으로 인해 폭력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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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time he lived, corruption and violence were rampant. Although he was not a corrupt person, he was well aware of the dangers of violence due to his upbringing. 

 

그는 아버지로부터 제화의 기술을 배우면서 자기방어를 위해서 스스로 검술을 익히긴 했지만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거침없으 칼을 휘두르는 다혈질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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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hough he learned the art of shoemaking from his father and practiced swordsmanship for self-defense, he was a hot-headed person who would swing his sword without hesitation if something offended him.  

 

하지만 그는 또한 경건하고 너그러운 면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자주 거룩한 십자가의 성지에 가서 기도를 했으며 또한 토요일에는 성모님의 성상 앞에 등불을 봉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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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he was also a pious and generous person. He often went to the shrine of the Holy Cross and prayed, and on Saturdays he also offered a lamp in front of the image of the Virgin Mary. 

 

또한 겨울에는 빈곤한 죄수들을 위해 필수품을 구호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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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tionally, in the winter, essential supplies were provided to impoverished prisoners. 

 

그가 21살이 되던 때 그는 청부 살인자의 결투 신청을 받아들여 싸우게 되었다. 비록 그는 승리하게 되었지만 복수하려는 무리들이 그를 뒤쫓자 그는 몸을 피하기 위해 카푸친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 Capuchin) 성당에 숨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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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he was 21, he accepted a contract killer's challenge to a duel and they fought. Although he was victorious, he was forced to hide in the cathedral of the Order of Friars Minor Capuchin to escape as the vengeful mob pursued him. 

 

그는 나중에 그 청부 살인자와 화해를 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지난날의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자기가 저지른 모든 폭력을 속죄하기 위해 카푸친 작은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 Capuchin)에 입회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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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later reconciled with the hitman, but the incident prompted him to reflect on his past life and decide to join the Order of Friars Minor Capuchin to atone for all the violence he had committed. 

 

그는 36년동안 요리사나 보조 요리사로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같이 사는 형제들이나 가난한 방문객들을 모두 다 배불리 먹이면서도 정작 자신은 빵과 쓰디쓴 허브가 섞인 물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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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lived a life of service as a cook or assistant cook for 36 years. Although he fed all his brothers and poor visitors well, he himself only ate bread and water mixed with bitter herbs. 

 

잠을 잘 때는 나무토막을 베게로 삼았고 딱딱한 나무판이 그의 침대였다. 그리고 그는 3시간 이상 잠을 자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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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he slept, he used a piece of wood as a pillow, and a hard wooden board was his bed. And he never slept for more than three hours. 

 

재난이나 역병이 일어났을 때, 성체 앞에서의 그의 기도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동포들을 위해서도 하느님의 자비를 간곡히 간구하는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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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disaster or pestilence occurred, his prayer before the Eucharist was a prayer earnestly pleading for God's mercy not only for himself but also for his compatriots.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부드럽게, 주님! 부드럽게! 저희에게 자비심을 보여주소서. 주님, 저는 이 은혜를 받고 싶사옵니다. 이것을 받고 싶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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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prayed like this: “Gently, Lord! softly! Please show us mercy. Lord, I want to receive this grace. “I would like to receive this.”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무척 사랑했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예수님의 충만한 희생과 사랑을 자주 묵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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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loved the crucified Christ very much, and would often meditate on the full sacrifice and love Jesus made for us on the cross. 

 

그는 그리스도복되신 어머니에 대해서도 다정한 사랑을 품었다. 성모님을 늘 ‘어머니’라고 부르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성모송을 바침으로써 그 어머니의 강복을 항상 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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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also had tender love for the Blessed Mother of Christ. I would always call the Virgin Mary ‘Mother’ and always seek her blessings by saying the Hail Mary before starting work. 

 

그는 36년간 회개를 위해 스스로 실천한 온갖 고생스러운 그 생활에 대해 한 치의 후회도 보이지 않고 1667년 1월 12일에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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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died on January 12, 1667, without showing any regrets about the hardships he had endured for 36 years in pursuit of repen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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