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천사 박사 성 토마스 아퀴나스(Saint Thomas Aquinas)

by 1살 비오 2024. 1. 14.
반응형

↑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토마스 아퀴나스(Saint Thomas Aquinas)
축일(Feast) 1월 28일(28 January)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시성(Canonized) 1323년 7월 18일(18 July 1323)
수호(Patronage) 순결(chastity), 철학자(philosophers), 학자(scholars), 도서 판매자(book sellers), 신학자(theologians)
신분(Identity) 신부(priest), 신학자(theologian), 교회학자(Doctor of the Church)
활동지역(activity area)  
활동연도(activity year) 1225-1274년

 

 

성 토마스 아퀴나스(Saint Thomas Aquinas)는 이탈리아 로마(Rome)와 나폴리(Napoli) 중간에 있는 로카세카(Roccasecca)에서 태어났다. 
더보기

Saint Thomas Aquinas was born in Roccasecca, between Rome and Naples, Italy. 

 

그는 신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다섯 살의 나이에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의 베네딕토회(Benedictines) 수도원으로 보내져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더보기

Under the influence of his devout mother, he was sent to the Benedictine monastery of Monte Cassino at the age of five, where he received the best education. 

 

1239년 그는 더 좋은 교육을 받아 훌륭한 지도자가 되길 바라는 가족의 뜻에 따라 나폴리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더보기

In 1239, he went abroad to study at the University of Naples, following his family's wishes to receive a better education and become a great leader.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도미니코회(Dominican Order)의 스승을 만나 큰 영향을 받으면서 가족의 뜻과는 달리 수도자가 되려는 뜻을 품게 되었다.
더보기

However, there he met a teacher of the Dominican Order and was greatly influenced by him, and he decided to become a monk, contrary to his family's wishes. 

 

그는 1244년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결국 도미니코회(Dominican Order)에 입회하였다. 이때 가족들은 그를 설득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강제로 데려다가 15개월 동안이나 성에 감금시킨 일도 있었다.
더보기

He eventually joined the Dominican Order in 1244, overcoming stubborn opposition from his family. At this time, when it became difficult for his family to persuade him, they forcibly took him in and imprisoned him in a castle for 15 months. 

 

그러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1245년에 다시 수도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성 대 알베르투스(Saint Albertus Magnus)의 문하생으로 공부하였고 사제품을 받았다.
더보기

However, he did not give up his will and was eventually able to return to the monastery in 1245. He studied as a student of Saint Albertus Magnus and was ordained a priest. 

 

그의 스승이었던 성 대 알베르투스(Saint Albertus Magnus)는 그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말 없는 황소는 그의 울부짖음으로 전 세계를 가득 채울 것이다.
더보기

His teacher, Saint Albertus Magnus, said this about him: “This mute bull will fill the whole world with his roar.” 

 

1252년부터 그는 주로 파리와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등 여러 곳에서 강의했으며 그의 저작 중 가장 유명한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의 집필에 착수하였다.
더보기

From 1252, he lectured in various places, mainly in Paris and Naples in Italy, and began writing his most famous work, “Summa Theologiae.” 

 

그의 미완성 대표작인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현대 가톨릭 신학의 뿌리로 받아들여질 만큼 위대한 신학 사상을 담고 있다.
더보기

His unfinished representative work, “Summa Theologiae,” contains such great theological ideas that it is accepted as the root of modern Catholic theology. 

 

하루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토마스(Thomas)야 너는 나에 대해 참 잘 썼다. 그 대가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는 “주님,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더보기

One day God appeared to him and said, “Thomas, you wrote very well about me. When asked, “What do you want in return?” he is said to have answered, “I want nothing but You, Lord.” 

 

이렇듯 하느님의 축복 속에 그의 집필 작업이 계속되었으나, 1273년 12월 6일 미사 중에 강렬한 하느님 체험을 한 후부터 돌연 모든 집필 작업을 중단했다.
더보기

Although his writing continued with God's blessing, he suddenly stopped all writing after having a strong experience of God during mass on December 6, 1273. 

 

그에게 왜 더는 글을 쓰지 않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느님의 발현 시에 형언키 어려운 신비를 보았다. 그동안 내가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은 이 신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더보기

When a friend asked him why he didn't write anymore, he answered: “When God appeared, I saw a mystery that was difficult to describe. “What I have put a lot of effort into writing over a long period of time is nothing compared to this mystery.” 

 

결국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미완의 대작으로 남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통해 하느님을 더 깊이 탐구하고 철저히 섬긴 대학자였다. 동시에 그는 지극히 겸손하고 거룩한 사람이었다.
더보기

In the end, “Summa Theologiae” remained an unfinished masterpiece. He was a university student who explored God more deeply and served God thoroughly through his intellectual abilities. At the same time, he was an extremely humble and holy person. 

 

그는 1274년 동방과 서방 교회의 재일치 가능성을 논의하라는 교황의 부름을 받았으나 1274년 3월 7일 선종하였다.
더보기

He was called by the Pope in 1274 to discuss the possibility of reunion between the Eastern and Western churches, but died on March 7, 127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