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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나의 가톨릭 이야기/[천주교] 가톨릭의 수호성인

[천주교 세례명] “인도의 선교사” 성 요한 데 브리토(Saint John de Britto)

by 1살 비오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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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성 요한 데 브리토(Saint John de Britto)
축일(Feast) 2월 4일(4 February)
성인 구분(Saint Type) 성인(Saint)
시복(Beatified) 1853년 8월 21일(21 August 1853)
시성(Canonized) 1947년 6월 22일(22 June 1947)
수호(Patronage)  
신분(Identity) 신부(Priest), 선교사(Missionary), 순교자(Martyr)
활동지역(activity area)  
활동연도(activity year) 1647-1693년

 

성 요한 데 브리토(Saint John de Britto)는 1647년 3월 1일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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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John de Britto was born into a noble family in Lisbon, Portugal, on March 1, 1647.  

 

그는 1662년 15세의 나이로 부모와 왕자의 반대를 물리치고 예수회(Jesuit)에 입회하였다. 그는 1673년 2월 5일 사제품을 받은 후 바로 인도 선교를 위해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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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662, at the age of 15, he joined the Jesuits, overcoming opposition from his parents and the prince. He was ordained a priest on February 5, 1673 and was immediately sent to India for missionary work. 

 

그는 당시 선교지역의 문화와 풍습을 존중했으며 그곳 주민들의 언어와 생활 습관 등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그는 지역 주민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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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respected the culture and customs of the mission area at the time and tried to follow the language and lifestyle of the local residents. He personally visited local residents and preached the gospel. 

 

그 과정에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만나자 그 지역 통치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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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process, he met everyone without discrimination regardless of India's caste system, which aroused strong opposition from local rulers. 

 

그는 1685년 마두라이 지역의 선교 책임자가 되었고, 이듬해 5월 입국이 금지되어 있던 마라바(Marava) 지역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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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became the head of the mission in the Madurai region in 1685, and in May of the following year entered the Marava region, where entry was prohibited. 

 

그곳에서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개종자가 나오자 교리교육을 도와주던 협력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약 한 달간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은 후 8월에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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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pite the short period of time there, as thousands of converts came out, he was arrested along with his collaborators who had been helping with catechesis and was tortured in prison for about a month before being released in August.  

 

1692년 그는 예비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미사를 봉헌하며 선교 활동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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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692, he resumed his missionary activities by baptizing catechumens and offering mass. 

 

당시 그가 머물던 곳의 한 왕자가 병으로 고생하던 중 그를 돕던 교리교사들의 극진한 간병으로 치유되자 세례받기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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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time, a prince in the area where he was staying was suffering from an illness and was cured thanks to the great care of the catechists who were helping him, so he asked to be baptized. 

 

그는 왕자에게 여러 명의 아내 중 첫 번째 부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려보내길 요구했고, 왕자는 그의 뜻대로 실행하고 나서 1693년 1월 6일 세례성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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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requested that the prince return all but the first of his several wives, and the prince carried out his wish and received the sacrament of baptism on January 6, 1693. 

 

그런데 왕자가 돌려보낸 부인들 중에 왕의 조카딸이 있었다. 이로 인해 앙심을 품은 왕은 군인들을 보내 그를 체포했고 그는 2월 4일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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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ever, among the wives the prince sent back was the king's niece. As a result, the vengeful king sent soldiers to arrest him, and he was beheaded and martyred on February 4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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