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성 메토디오(Saint Methodius) |
축일(Feast) | 2월 14일(14 February)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인(Saint) |
시복(Beatified) | |
시성(Canonized) | |
수호(Patronage) | |
신분(Identity) | 대주교(Archbishop), 선교사(Missionary) |
활동지역(activity area) | 유럽(Europe) |
활동연도(activity year) | 826 or 827-869 or 885년 |
성 메토디오(Saint Methodius)는 그리스의 테살로니카(Thessalonica)에서 고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무역항이었던 테살로니카에는 슬라브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훌륭한 학교도 많았다.
Saint Methodius was born in Thessalonica, Greece, as the son of a dignitary. There were many Slavs living in Thessalonica, which was a trading port at the time, and there were many excellent schools.
이런 환경으로 인해 성 메토디오(Saint Methodius)는 어려서부터 슬라브 민족의 언어와 풍습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Due to this environment, Saint Methodius was frequently exposed to the language and customs of the Slavic people from an early age.
옵시키온(Opsikion) 지방의 슬라브 식민지 가운데 한 지역의 총독으로 오랫동안 지내다가 사직하고 돌아온 그는 비티니아(Bithynia)에 있는 올림푸스 산의 수도원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After serving as governor of one of the Slavic colonies in Opsikion for a long time, he resigned and returned to life as a hermit in a monastery on Mount Olympus in Bithynia.
858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 미카엘 3세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된 성 포티우스(Saint Photios the Great)는 성 치릴로(Saint Cyril)에게 러시아의 하자르족(Khazars)에 대한 선교를 맡겼다.
In 858, Michael III, Emperor of the Eastern Roman Empire, and Saint Photios the Great, who became Patriarch of Constantinople, entrusted Saint Cyril with a mission to the Khazars in Russia.
성 메토디오(Saint Methodius)는 동생과 함께 선교를 위해 출발했고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먼저 하자르어를 익혀 수많은 개종자를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
Saint Methodius set off for missionary work with his younger brother, and for effective missionary work, he first learned the Khazar language and succeeded in gaining numerous converts.
동생인 성 치릴로(Saint Cyril)는 선교를 위해 성경을 고대 슬라브어로 번역하고 그리스 문자에 기초하여 슬라브 알파벳을 만들었다.
His younger brother, Saint Cyril, translated the Bible into Old Slavonic for missionary work and created the Slavic alphabet based on Greek letters.
최종 확정된 키릴 문자(Cyrillic script/alphabet)는 아직도 현대 러시아어와 많은 다른 슬라브 언어의 알파벳으로 사용되고 있다.
The finalized Cyrillic script/alphabet is still used as the alphabet for modern Russian and many other Slavic languages.
성 메토디오(Saint Methodius)는 동생인 성 치릴로(Saint Cyril)를 도와서 복음서와 시편 그리고 여러 전례서를 슬라브어로 번역하였다.
Saint Methodius assisted his brother Saint Cyril in translating the Gospel, Psalms, and several liturgical books into Slavic.
그런데 두형제의 이러한 활동은 라틴 교회 성직자들의 원성을 샀다. 당시 라틴 교회는 전례에서 라틴어 외에 다른 언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다.
However, these two brothers' activities drew the ire of the clergy of the Latin Church. At the time, the Latin Church prohibited the use of languages other than Latin in the liturgy.
이를 계기로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Saint Nicolaus I)는 867년에 두 형제를 로마로 소환했다. 그런데 그들이 로마로 가던 도중 교황이 선종했고, 후임 교황으로 선출된 하드리아누스 2세(Hadrianus II)는 두 형제의 방문에 매우 호의적이었다.
On this occasion, Pope Saint Nicolaus I summoned the two brothers to Rome in 867. However, while they were on their way to Rome, the Pope died, and Hadrianus II, who was elected as the successor, was very favorable to the two brothers'
두 형제는 교황에게 슬라브어 사용에 대한 자기들의 의견 또한 충분히 설명하였다. 이에 교황은 그들의 뜻을 받아들여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The two brothers also fully explained to the Pope their opinions on the use of the Slavic language. Accordingly, the Pope accepted their wishes and officially approved the use of Slavic in the liturgy.
그들이 로마에 머무르는 동안 동생인 성 치릴로(Saint Cyril)는 건강이 악화하여 869년 2월 14일 선종하였다.
While they were in Rome, their younger brother Saint Cyril's health deteriorated and he died on February 14, 869.
동생이 선종한 후 그는 교황 특사 자격으로 모라비아(Moravia)의 슬라브족에게 돌아갔다.
After his brother's death, he returned to the Slavs of Moravia as papal legate.
그러나 계속해서 적대적인 시선으로 그의 활동을 지켜보던 독일 교회는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과 그의 정통성을 문제 삼아 그를 이단자로 고발하였다.
However, the German church, which continued to watch his activities with a hostile gaze, took issue with his use of Slavic language in the liturgy and his orthodoxy and accused him of being a heretic.
그는 880년에 로마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교황에게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과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뛰어난 변론을 통해 자기 정통성을 인정받고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을 다시 허가를 받았다.
He was summoned to Rome in 880 to be examined. However, through his outstanding defense of the use of Slavic language in the liturgy and his own legitimacy to the Pope, his orthodoxy was recognized and the use of Slavic language in the liturgy was again permitted.
882년 교황의 뜻에 따라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한 성 메토디오(Saint Methodius)는 제자 두 명의 도움으로 동생의 뒤를 이어 마카베오서를 제외한 성경 전체와 그리스어로 된 교회법전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였다.
Saint Methodius, who visited Constantinople in 882 according to the will of the Pope, followed in his brother's footsteps with the help of two disciples and translated the entire Bible, except the Book of the Maccabees, and the Code of Canon Law from Greek into Slavic.
쉼 없는 활동과 투쟁으로 건강이 나빠진 그는 885년 4월 6일 선종하였다.
His health deteriorated due to constant activity and struggle, and he died on April 6, 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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