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성 스타니슬라우스(Saint Stanislaus of Szczepanów) |
축일(Feast) | 4월 11일(11 April)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인(Saint) |
시복(Beatified) | |
시성(Canonized) | 1253년 9월 17일(17 September 1253) |
수호(Patronage) | |
신분(Identity) | 주교(Bishop), 순교자(Martyr) |
활동지역(activity area) | 크라쿠프(Krakow) |
활동연도(activity year) | 1030-1079년 |
성 스타니슬라우스(Saint Stanislaus of Szczepanów)는 폴란드에서 귀족 가문의 신심 깊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Saint Stanislaus of Szczepanów was born in Poland to devout parents from an aristocratic family and grew up receiving Christian education from an early age.
그는 사제가 된 후 설교 사제로 활동하였다. 그는 설교 사제로서 큰 명성을 얻었고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영적 지도를 받기를 청했다.
After becoming a priest, he worked as a preaching priest. He gained great fame as a preaching priest, and many people came to him for spiritual guidance.
이후 그는 주교가 된 뒤에도 더욱 열정적으로 설교하였다. 그리고 세속의 재물을 멀리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전념했다.
Afterwards, even after becoming a bishop, he preached even more passionately. And he shunned worldly wealth and devoted himself to helping the poor.
당시 폴란드를 다스리던 왕은 볼레수아프 2세(Boleslaw II)로 1069년 러시아에 대항해 일어난 키예프(Kiev) 전투에서 승리한 뛰어난 군인이었다.
The king who ruled Poland at the time was Boleslaw II, an outstanding soldier who won the Battle of Kiev against Russia in 1069.
하지만 그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무절제한 폭력과 범죄에 빠져들었고, 윤리적으로도 타락한 행동을 많이 자행하였다.
However, while fighting numerous wars, he indulged in unrestrained violence and crime, and committed many ethically corrupt acts.
그는 누구도 왕에게 직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왕의 잔학성과 부도덕성을 용감하게 비판하였다. 그의 비판에 왕은 거짓으로 회개를 가장하기도 했으나 그 또한 오래가지는 못했다.
He courageously criticized the king's cruelty and immorality in a situation where no one could speak directly to the king. In response to his criticism, the king faked repentance, but that did not last long.
게다가 아름답다고 소문난 한 귀족 부인을 궁으로 납치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귀족들의 분노를 사는 등 정치적 불안과 혼란마저 초래하였다.
In addition, an incident occurred in which a noble wife, who was reputed to be beautiful, was kidnapped into the palace, incurring the wrath of the nobles and causing political instability and confusion.
하지만 누구도 감히 왕에게 맞서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왕의 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등 그동안 그의 모든 기도와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자 결국 공식적으로 왕을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But no one dared stand up to the king. At the same time, he publicly criticized the king's sins and urged him to repent, and when all his prayers and efforts were in vain, he ended up officially excommunicating the king.
그가 국왕을 파문하고 대성당의 출입을 저지하자, 분노가 치민 왕은 오히려 그가 자신의 반대파와 모의해 모반을 일으키려 했다고 고발하였다.
When he excommunicated the king and prevented him from entering the cathedral, the king, who was furious, accused him of conspiring with his opponents to start a rebellion.
그리고 왕은 그를 살해하기 위해 부하들을 대동하고 가서 미사를 봉헌하던 그를 끌어내 직접 끌어내 직접 칼을 뽑아 살해하였다.
And in order to kill him, the king went with his men and dragged him out while he was offering mass and personally pulled out his sword and killed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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