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으시면서 읽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성인명(saint name) | 성 요셉 모스카티(Saint Giuseppe Moscati) |
축일(Feast) | 4월 12일(12 April) |
성인 구분(Saint Type) | 성인(Saint) |
시복(Beatified) | 1975년 11월 16일(16 November 1975) |
시성(Canonized) | 1987년 10월 25일(25 October 1987) |
수호(Patronage) | 생화학(Biochemistry), 의사(Doctors) |
신분(Identity) | 의사(doctor), 과학자(scientist) |
활동지역(activity area) | 나폴리(Napoli) |
활동연도(activity year) | 1880-1927년 |
성 요셉 모스카티(Saint Giuseppe Moscati)는 1880년 7월 25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6일 만에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1888년 첫 영성체를 하였다.
Saint Joseph Moscati was born in Italy on July 25, 1880, was baptized as an infant six days later, and made his first Holy Communion in 1888.
1897년 대학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하던 그는 어려서부터 깊은 신앙과 친절한 성품을 지녔는데, 대학 시절에도 학업에 열중하면서 기도에 충실하여 매일미사 참례를 하였다.
He entered university in 1897 to study medicine. He had deep faith and a kind personality from a young age. Even during his university years, he devoted himself to his studies, was faithful to prayer, and attended mass every day.
1903년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의사로서 바쁘고 고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정성껏 환자들을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돌보는 데에도 깊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교회를 떠나 있던 많은 사람들을 신앙생활로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
After completing his studies with excellent grades in 1903, he began a busy and arduous life as a doctor. He not only cared for patients with great care, but also took a deep interest in caring for their souls, helping many people who had left the church return to a life of faith.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데, 이들을 무료로 진료하였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In particular, he gave a lot of love to the poor, not only providing them with free medical care, but sometimes providing them with financial help.
그의 진료소에는 그에게서 진료와 마음을 위안을 받으려는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이처럼 과중한 활동 중에도 그는 의학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아 32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At his clinic, patients lined up to receive treatment and comfort from him. Despite this heavy workload, he did not neglect medical research and published 32 papers.
그는 화산이 폭발하였을 때는 즉시 피해 지역으로 달려가 위험을 무릅쓰고 인근 병원의 환자들을 옮기는 작업을 거들었으며, 1911년 콜레라가 창궐하였을 때에는 이 전염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병원의 책임자로도 활약하였다.
When a volcano erupted, he immediately rushed to the affected area and risked his life to help move patients from nearby hospitals. When cholera broke out in 1911, he devotedly cared for patients with the epidemic, and during World War I, he worked as a military hospital. He also served as the person in charge.
1919년 40세도 안된 나이에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의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 임명된 그는 병원에서의 오전 진료를 마치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후에 자신의 집에서 환자를 진료하던 중 갑작스런 발병으로 사망하였다.
In 1919, at the age of less than 40, he was appointed as one of the directors of a hospital for terminally ill patients. After finishing his morning treatment at the hospital, he died of a sudden illness while treating patients at his home in the afternoon as usual.